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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3 글뻥 8만대장경과 김영환대령 (2)

* 1979년 공군발행 잡지 기고글중 당시 편대원이었던 서상순씨의 기고입니다.

공비토벌출격기 - 가야산 해인사를 중심으로 - 서상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들은 막강한 대군으로 일거에 남한을 파멸시키려 하였으나 유엔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3개월이 못되어 그 야망을 여지없이 분쇄시켰었다.
그들은 막대한 인명의 손실은 물론 보급품, 장비, 대전차포까지도 모조리 버리고 도망쳤으나 퇴로가 막힌 패잔병들은 남한 각지 산악지대에 숨었으며 지리산에서는 6천 5백, 가야산에는 9백여명이 모여 후방 치안을 교란시키고 인근 지역을 위협하였다.

서남지구 특별경찰대가 지리산 공비토벌에 임하였으나 장비와 수적인 미흡으로 임무수행이 어려워 1951년 7월부터 우리 공군이 합동작전을 폈으며, 그 해 12월에 육군도 가담하여 지공 합동으로 토벌전이 전개되었다. … (중략) …

그해 12월 18일 있었던 일이다. 며칠 계속되어 내린 진눈깨비로 공기가 습하고 지리산 높은 골짜기마다 안개구름이 깔렸으나 동쪽 아롱산 능선 사이로 눈부신 아침 해가 밝아와 그동안 피로를 푼 전투조종사들은 마음대로 푸른 하늘을 날며 종횡무진 곤두박질치며 마음껏 때려부수고 싶은 감정에 설레었다. 6시 30분 아침식사가 끝났을 때 벌써 작전참모 장지량 중령이 직접 적정을 공중정찰하고 돌아와 ‘찌르릉’ 하고 긴급출동을 알리는 비상벨이 울렸다.

아직까지 전례로 보아 우기에는 아군이 불리하고 맑은 날에는 승전하였으며, 또 야간에는 적이 활기를 띠고 주간에는 아군이 전승하였으니까 말이다. 경찰부대로부터 긴급 지원요청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주력전투기 P-51(F-51) 무스탕]

나에게도 출격명령이 내렸다. 얼마 뒤 우리 편대기들은 낙동강 줄기를 따라 북상하다가 비행지휘관 김영환 대령이 인솔하는대로 함안 상공에서 기수를 산악지대로 돌려 얼마 안가 협천 상공 8백feet에서 ‘모스키토’(미 5공군 정찰기명)와 만나라는 무전명령을 받았었다.

우리 4기 편대는 김대령의 1번기, 2번기가 강호륜, 3번기가 박희동, 4번기가 필자 등 강팀이었다. 정찰기의 훈령은 가야산 동남으로 산줄기와 산줄기, 계곡과 계곡 사이로 조그마한 냇물이 흐르는데 그 중 한 능선이 흐르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울창한 산림을 이루어 삼태기 모양의 형국 안에 온화하게 보이는 분지에 소복히 내려다 보이는 사찰과 인근의 소굴을 폭격하여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이다. 편대장 김영환 대령의 38호기가 정세를 일독하고자 ‘모스키도’ 뒤를 따라 계곡으로 급강하하였다.

* 아래 모스키토 전폭기로 알고 있었으나 "모스키토"는 FAC(전선통제기)의 암호명이었다고 함.
당시 FAC역할은 T-6G형이 맡고 있는것으로 확인되어 정정합니다.

[암호명 모스키토는 FAKE... 2차 대전당시의 모스키토전폭기/정찰,폭격,공중전 다목적으로 써먹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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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진짜 "모스키토"는 바로 T-6G형]

그러자 사찰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황히 숲속으로 도피하는 모습, 잘 위장된 참호며 능선을 따라 곳곳에 구축된 진지 등 공비들의 불야성이라 할 수 있었다. 계곡 동쪽 신작로를 따라 긴 언덕 위에 아군임을 알리는 주홍색 T자형 대공포판이 깔렸는데 그 곳에 진을 친 지상군이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우리들은 각각 500파운드 폭탄 2개, 5촌 로케트탄 6개, 캬리바 50, 기관총 1,800발씩 장비하였고 기장만은 750파운드짜리 네이팜탄을 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정찰기의 목표 제시용 연막탄이 바로 해인사 큰절 마당에 떨어져 백색 연막이 선명하게 목표를 가리켰다.

네이팜탄 한발이면 온 사찰을 잿더미로 바꾸고 각기의 무장으로 공비의 소굴을 뿌리뽑을 수 있어 우리들의 마음은 전의에 부풀었다. 이윽고 편대장기가 급상승 선회하며 요기에 명령했다.
“각 기는 편대장의 뒤를 따르되 편대장의 지시없이 폭탄과 로케트탄을 사용하지 말라.”

그리고 기관총만으로 사찰 주변의 능선을 소사공격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명령대로 교묘히 위장된 적의 아지트를 찾아 소사하여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산정에서 계곡으로 마침내 궁지에 몰린 적이 우왕좌왕하고 사찰 주변으로 몰리며 숲 사이에서 최후 발악인 양 우리들에게 지상 포화를 퍼붓고 있음을 알았다. 이때 또다시 정찰기에서 독촉훈령이 라디오를 통해 내렸다.
“해인사를 네이팜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잠시후 사찰이 불바다가 될 것을 생각하자 통쾌감마저 앞섰다. 그때,
“편대장님, 많은 적이 해인사로 몰리고 있습니다.”
나는 빨리 공격하자고 재촉보고를 하였다.
“각 기는 공격을 하지 말라.”
하고 대장님의 날카로운 명령이 다시 라디오를 통해 들렸다.

“라자, 라자.(알았습니다)”
하고 또 명령에 따르자 일렬종대로 해인사를 향해 동에서 서로 법당 용마루를 지나면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의 간판도 똑똑히 보였다. 숲 속에 많은 적이 모여 앉은 것을 보고 얄미워 로케트탄의 세례를 퍼붓고 싶은 충동도 있었으나 급상승 선회하다가 그뒤 해인사 뒷산 몇 개의 능선을 넘어 폭탄과 로케트탄으로 적을 무찔렀다.

그날 저녁 일이다. 미 공군 고문단의 XX장교가 공지합동작전본부에서 장교를 대동하고 왔는데 편대 전원이 전대장실에 모였다.

냉랭한 분위기에 공지합동작전에서 왔다는 소령이 오늘 가야산 목표를 유도한 정찰장교였다고 소개하므로 나는 오늘의 명령불응을 직감했다. 그는 심각한 어조로,
“오늘 저에게 불찰이 있었습니까?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김영환 장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니요, 오늘은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고 묵직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목표를 알리는 연막탄의 흰 연기를 보셨습니까?”
“네.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엉뚱한 곳을 공격하더군요. 왜 제가 공격을 중지하고 귀대하라고 훈령하였는지 아십니까?”

김대령님의 온화한 눈초리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령께서는 지상군의 요청에 따라 목표를 지시하였겠지만 그것은 사찰이 아니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찰이 전쟁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김대령님은 국가보다도 사찰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니지요.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할 것이야 없지요. 그러나 공비보다는 사찰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공비란 어디까지나 유동물(流動物)입니다. 그들은 일정한 전선을 형성하지 않고 있으며, 일단 그 지역에서 몰아내도 다시 침입해 오는 것이 특징이 아니겠오? 따라서 지리산 지구가 밤에는 인민공화국이요, 낮에는 대한민국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오.”

“그러면 김대령님은 공비들을 언제까지나 방치해 두자는 것이 아닙니까?”

“천만에… 해인사는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그들이 현 정황으로 장기간 유지해 나갈 수 없는 독안에 든 쥐! 단지 놈들이 지리산 근거지로 통하는 통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찰에는 공비와 바꿀 수 없는 팔만대장경이란 세계적인 국보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인 문화재가 있습니다. 가야산에 출몰하는 공비 몇 백명을 살상하였다 해서 전쟁을 판가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절은 1,300년의 역사가 있고 고려 고종 24년에서 38년, 15년에 걸쳐 8만여면에 달하는 대장경을 판각해(750년전) 봉안하 우리나라 국보사찰입니다. 소령께서도 가장 가까운 예로 2차 대전때 유럽의 파리와 일본의 동경을 폭격하지 않은 실정을 아실 것입니다. 그 처참한 대전에서도 이 도시들은 총탄 한발 맞지 않고 오늘도 그대로 인류의 귀중한 문화재로 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공중 공격을 받고 사찰로 모여든 사람들은 반드시 납치되었던 양민들이 공습을 틈타 적에게서 벗어나온 사람들이 틀림없습니다. 또 지상군의 보고도 그렇습니다.”

그 말씀에 나는 과연 편대장님의 판단이 정확한데 또다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그 소령은 얼굴에 누그러진 미안한 빛을 띠우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동자세를 취하고 손을 들어 경례를 하며 이해와 존경을 표시하고,
“김영환 대령님 같은 훌륭한 상관을 모신 대한민국의 공군 장병들이 부럽습니다.”

- 미군에서 모스키토를 운용했다고 하는 부분은 좀 틀린부분 같습니다. 아마도 미 공군소속으로 영국군이 파견되어 운용되지 않은게 아닐까 합니다.

2006/03/23 15:36 2006/03/23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