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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1 글뻥 중국과 만리장성에 대한 잡설 (2)
일단 하나 밝혀 두고 싶은것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을 빼고는 논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어디까지나 중국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내전과 전쟁으로 뒤범벅되어온 중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학교에서와 다양한 책을 통해 알게된 중국의 역사를 가지고 논하고자한다. (주1)

중국의 역사는 100%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본 글이 쓰여졌다.

일단 "하"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다. 중국문명의 태동기이다.
그리고 하나라 말기에 걸왕이라는 엄청 똑똑하고 힘좋은 왕이 있었는데 막판에 "말희"라는 여자를 얻으려 제후국을 힘으로 누르고 그녀를 얻었지만 그녀의 걸왕에 대한 요구는 끝이 없어 호화스러운 궁을 새로짖거나 연못을 술로 채우고 주변 나무에는 육포를 걸어두고 나체주의정신으로 놀아 났다는 "주지육림"이라는 고사성어를 탄생시키는 등의 질펀나게 놀아나다가 제후국의 "상"나라 탕왕이 걸왕과 말희를 힘으로 추방하여 황제국이 된다.
이후의 역사를 "은나라" 또는 "상나라"라 불렀으나 마지막왕인 주왕은 하나라의 걸왕과 아주 빼다 박은 인물인지라 "달기"라는 여자를 공물로 받았는데 환락의 끝을 보고 싶다하여 120일동안 "주지육림"에서 잔치를 하고 기름을 바른 구리기둥위를 죄수들이 걷게하고 간언하는 자들은 죽여서 젓갈을 담그고 포를 떠서 인육을 먹었다고한다.
"은" 역시 후에 제후국중 하나인 "주"에게 멸망을 당하게 된다.

"주"는 본격적인 봉건국가 였다고 전해지고 건국초기부터 제후들에게 땅을 나눠주어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후국들이 주군 몰래 세력다툼하고 서로 땅따먹기 했는데 이때를 "춘추시대"라하고 이후에 진나라가 "조","위","한" 3개 가문이 분리 독립하면서 "전국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주군의 나라는 개뿔.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형국이 된다. (마치 일본의 히데요시가 1차 전국 통일하기전의 상황과 같다.)
그러다가 "진"의 "영정"이 나머지 국가를 모두 박살내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시황제" 즉, "진시황"이 탄생한다.

이때 "진"은 스스로 동쪽에 만리장성을 쌓아 외부의 침입을 막고 안으로는 아방궁을 지었지만 오래가지 못해 유방과 항우로 대표되는 내란 끝에 유방이 "한"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가 잠깐 10여년간 "한"왕조의 외척이 세운 "신"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후에 다시 "한"이 복귀하는데 이를 "전한/신/후한"으로 나누게 된다.

"후한"시대말기 그 유명한 "위촉오"삼국시대가 열리게 되나 후에 "진"에 의해 통일되지만 "위진남북조시대"라 하여 동진, 서진, 북조, 남조, 16국 등등등의 나라로 나뉘어 또 내란(?)의 시기로 접어들다가 "북주"에 의해 "수나라"가 세워진다. 무리한 세금에다가 만리장성 넘어의 고구려 침공 실패로 곧 멸망하고 다시 "당나라"가 건국된다.

중국의 역사에서 "당"이 차지하는 위치가 높은데 이는 최초로 만리장성 밖의 동방진출과 서쪽 실크로드를 통한 외부교역등에 성공한 시기이다. (이때 나온것이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

당이 망하자 이번에는 "5대16국시대"라 하여 또 내전이다.

복잡한 정세로 인해 정신없는 와중에 등장한것이 거란족이 세운 "요", 기존 중국 토착민의 "송(이후에 남송, 북송으로 또 분열)", 여진족의 "금" 등이 중국 땅덩어리를 가지고 다투게 되나 징기스칸의 몽골에 전부 버로우하였고 후에 "원"이 성립된다.
이때의 원의 역사가 남긴 족적에 비해 중국에서 폄하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민족의 나라이기 때문이리라.
암튼 원이 망하자 다시 한족의  "명"이 건국되지만 임진왜란으로 통하는 동북아 전쟁에 재정압박을 받고 만주족(금나라의 후예이니 여진족이라 함이 옳을듯)에게 멸망하여 "청"이 건국된다.

중국이 왜 민족 중심으로 역사를 쓸수 없는지에 대한 모순이 여기서 발생한다.

1. 한족에 대한 역사 기술은 "원", "청", "요", "금"에 대한 기술을 할수가 없다. (주2)
2. China 는 "지나" 즉, 진나라인 이라는 뜻으로 "한족"은 "진"을 계승한 한의 후예라는 뜻이다.
   즉, 한족의 역사기술은 동쪽으로는 만리장성에 영토가 제한된다.

다시말해 중국은 현재의 중국을 통합하여 관리할 수 있는 역사개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접근이 공교롭게도 주변국과 문제를 일으킬수 밖에 없는 현재의 영토중심 역사관이다. (주3)
그러나 더 큰문제는 영토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기존의 고서들과 역사적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중화" 사고방식으로는 만리장성 밖에 어떠한 문명도 없어야 한다.

다시말해 오랑캐 부족국가만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오른편에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이 뚜렷한 문명의 족적을 남겨버렸다.

따라서, 만리장성밖에서 유물이 출토될때마다 만리장성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中 동북공정 조작 고구려 땅 깊숙이
한국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12-15 02:41

중국이 또 다시 과거 고구려 영토에 '만리장성 유물심기'에 나섰다.

중국의 반관영통신 중국신문사는 14일 기원전 3세기 진한(秦漢)시대에 축적된 만리장성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지린(吉林)성 만리장성 자원조사단을 인용, 퉁화(通化)현 싼커 위수진 일대에서 만리장성 유적 11곳을 발굴했다고 보도했다. 발굴된 유적은 옛 성터와 봉화대 등으로 만리장성 부속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고고학계는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도 퉁화현 싼커 위수진 남쪽에서 만리장성 유적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만리장성의 북쪽 동단(東端)이 지금까지 알려졌던 랴오닝(遼寧)성 신빈(新賓)보다 10.9㎞ 더 동쪽인 퉁화현 임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퉁화현은 인근 지안(集安)과 함께 고구려 대표적 유적지로 2006년 고구려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분군 2기가 발견됐다. 당시 중국 학계는 이를 근거로 기원전 37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터는 당초 알려진 환런(桓仁)현이 아니라 퉁화현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만리장성 북쪽 동단을 고구려 영토 내로 더 연장한 이유는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의 논리를 굳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앞서 지난 4월 만리장성의 길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500km가 더 긴 8,851.8km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한 데 이어, 9월에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산해관(山海關)이 아니라 북한과 접경지역인 단둥(丹東)의 후산성(虎山城)이라고 주장했다. 후산성은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박작성(泊灼城)으로 당(唐)태종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중국측도 2004년 후산성을 증축하기 전까지 후산성이 고구려의 유적임을 인정, 성벽과 대형 우물 터 등에 고구려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까지 내걸었으나 최근 만리장성의 동쪽 끝 지점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 9월 이후 '만리장성 동단=후산성' 이라고 명명한 표지 개막식을 했으며 고고학계는 역사 교과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헐...

주1) 다시말해 잡설 이상의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2)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단일 민족 사관으로는 원, 청, 요, 금,수, 당, 남북조의 북조의 대부분 및 오대십국의 대부분 역시 기술을 할 수 없습니다"로 바로님의 지적에 따라 정정합니다.
주3) 중화라는 개념자체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오류입니다. 중화는 전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다시말해 중화의 역사로 본다면 중원과 기타 지역이고 모든 세계가 자신을 중심에서 돌아간다는 시각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역사는 아직도 씌여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 (헐퀴.. 이 생각이 더 무섭다...)
2009/12/21 11:18 2009/12/21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