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사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9/09 글뻥 패전의 기록들 (2)

기동전의 "기"자도 모르는 일본군 출신들의 무능을 까보자.

1. 채병덕
이 인간 간첩이 분명한 장군이었다.
1950년 북침떠들다가 1950년 6월 24일 전장병중 50%에게 휴가 실시. 동일 저녁 장교클럽 오픈 파티로 거의 모든 장교소집해서 술퍼먹인 인간되겠다. 거기다가 첩보대가 찍어온 전차의 사진을 묵살하였으며 개전첫날 의정부-포천 방어선에서 무너지는 7사단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수도사단 및 예비 3개 사단을 축차 투입! 5개 사단을 말아먹은 인간이다.(당시 한국군은 8개 사단이 전부)
거기다가 철수중 수많은 장비도 버려두고 한강대교 폭파!!
더군더나 분대장에게 까지 즉결권 부여. 이후 맘에 안든다고 부하 죽여 버리고 난리도 아님.

2. 유재흥
이 인간은 원균의 재림이었다. 만주군 대위 출신으로 1949년 4.3사건의 전투사령관으로 민간인 학살 지휘.
개전초 7사단장으로 부하를 잃는다. 물론 그럴수 있다. 다른 전선도 붕괴중.
이후 2군단장으로 평남 덕천, 영원 지구 전투에서 6,7,8사단 괴멸. 여기까지도 있을수 있는 일이다. 다른 전선도 붕괴중이었으니까..
이후 3군단장으로 군단 보급로인 오마치 고개가 중공군 중대병력에게 점령됨. 갑자기 군단장은 작전회의를 핑계로 비행기 편으로 후방으로 가고 (당시 회의주관자인 백선엽장군의 회고록에는 작전회의에 없었다고 회고) 이어서 후방이 차단당했다는 압박감에 모든 군단병력이 와해되었고 계급장 떼고 후방으로 도주 시작. 이후 3일간 70km나 밀린 끝에 전선 대붕괴와 함께 3군단 전멸. 이후 밴플리트는 한국군 총사령관 정일권과 3군단 사령부로 급히 가서 3군단 해체하고 작전권을 한국군으로 부터 박탈함.
더 재미있는것은 자신때문에 뺐긴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를 외쳤음. 최고임!


2009/09/09 00:25 2009/09/09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