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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6 글뻥 유대인 격리역사

이스라엘인들이 주장하는 자신의 역사를 100%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그 오랜 시간을 이집트의 노예로 지낸후 이집트 왕자였던 모세의 방황을 따라 사막을 돌아 다닌끝에 기원전 1900년경에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였고 무려 700년동안 뭐했지는 모르겠지만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이른다.

익히 알고 있는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 최고 전성기를 누린 이스라엘은 기원전 9세기경 유대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하더니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722년 당시 중동의 최강자였던 아시리아에 그 짧은 국가로써의 역사를 마감하고 유대왕국은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지도에서 삭제당한다.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에 의해 나라가 다시 세워지나 기원후 70년경에 로마에 대한 저항으로 결국 다시 망하고 만다. 이당시 이스라엘 민중으로 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예수였다는 주장과 함께 그를 따르는 12제자의 일대기가 바로 성경으로 로마에 대한 저항과 기존 사제단과의 마찰, 기적과 죽음과 부활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느냐는 별개로 하자)

이렇게 왕창왕창 자기나라 말아 먹은 이스라엘인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살게 되는데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정체성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집단 거주 지역을 만들게 된다.
마치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한인타운, 차이나타운, 제패니스타운 등이 있는 것처럼 떠돌이 정착민 이스라엘인들도 저들 스스로 촌락을 세우고 집단으로 모여살았던 것이다.
(이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이렇게 집단으로 모여살고 직업/교육이 허락되지 않자 그들은 당시에는 천하다고 여긴 장사를 하였고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2000년정도 지난후의 그 결과가 현재의 유태인의 모습이다.)

그렇게 융화되지 못하고 살자. 1280년 모로코에서는 "밀라"라고 하는 강제 격리구역을 만들어 난민수용소와 같이 이스라엘인들을 쳐넣고 가둬버린다. 이것이 점점 퍼져서 14~15세기경에는 전유럽으로 확대되었고 1516년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운하사이의 작은 섬에 정착허가를 받고 살고 있었는데 그 지역명이 바로 게토누오보(Ghetto Nuovo), "새로지어진 주물공장"이란  뜻이다. 후에 터키에 살던 유대인들도 정착을 하였는데 게토베키오(Ghetto Vecchio), "옛날 주물공장"이란 뜻으로 이후 유대인이 사는 곳을 "게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로마교황청은 게토를 강변 늪지대로 설정하고 이곳에 벽을 세운후에 밤마다 잠궈 유대인의 야간 통행을 원천차단해버린다.

20세기 나치에 의해 유대인은 격리되고 이런 지역을 게토라 나치 독일 점령지 곳곳에 세워진다.
또한 그들 스스로를 감시하기위한 유대인 경찰도 존재하였다.

* 해방후의 게토 어린이들 (아우슈비츠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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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토의 유대인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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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샤바 게토 봉기사건의 한부분을 이야기한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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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4월 19일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은 자신들 이송결과가 가스실이라는 사실을 알자 지하기구였던 유대인투쟁기구가 앞장서서 무장봉기하게된다. 먼저 물러난 독일군은 4월 20일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실시하였고 4주간의 진압작전끝인 5월 16일 독일측 사상자 수백명에 유대인 전사자만 5만이 넘는 참혹한 결과로 끝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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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하여 천천히 굶겨 죽이기로 작정한 나치는 무장 저항 사건으로 인해 대놓고 죽이기 시작한것이다.
이사건이 터진 한참후인 1970년 우리가 감동했던 역사의 한장면이 연출되는데 바로 1970년 겨울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무장 저항이 있었던 바로 그장소에서 게토 추모비에 헌화하며 무릎을 꿇은 바로 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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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영국에 의해 독립한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국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갔고 그 자세한 이야기는 일전에 이스라엘 전쟁사라는 글을 남겼었다.

1. 건국편
2. 1차전쟁편
3. 2차전쟁편
4. 3차전쟁편(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5. 4차전쟁편(번외, 60대1의사나이, 이집트, 시리아, 반격)

기나긴 전쟁이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의 무장투쟁은 뭔헨 올림픽 테러등을 통해 끝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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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전쟁끝에 20세기말 PLO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정부는 대립을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의 땅으로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를 팔레스타인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평화서명을 한다.
그 평화의 길을 열었던 이스라엘 라빈 총리는 1995년 11월 이스라엘 극우에게 암살 당했지만 끝없는 노력끝에 1999년 9월 5일 와이리버 평화협정 이행합의서에 서명했다.

* 라빈총리와 조갑제 인터뷰 장면으로 인터뷰 30여 시간후 암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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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가자와 웨스트 뱅크지역을 할당받아(실은 거주허가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향후 독립국가로써의 로드맵대로 진행되는듯 했다. (자치정부 수립-독립국 수립)

* 이스라엘에서 이집트와 접한 구석텅이와 동예루살렘의 웨스트뱅크(이지역은 요르단으로 뺐은 지역)이 바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로 합의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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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꼴을 못보는 이스라엘인들은 꼬딱지만한 가자지구를 방벽으로 쳐버리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과거 나치에서 배운 방법 그대로 팔레스타인들을 괴롭히는데 밤에 아무소리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쳐 불심검문을 한다던가 말좀 안먹힌다 싶으면 방벽을 봉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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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단 360 제곱킬로미터의 공간에 150만명이 살고 있는데 1인당 0.24 제곱미터 다시말해 24X24cm의 공간만 허락된 옛날의 나치 게토와 전혀 달를게 없는 상황이되어 버린다.

* 팔레스타인들에게는 장벽넘어의 해변도 꿈이며 사치에 불과한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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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중에 아라파트 사후 기존 PLO를 대체한 하마스는 2008년 1월 23일 장벽을 폭파시켜 이집트로의 길을 연다.

* 폭파한 장벽밖 이집트로 나온 팔레스타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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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이 뚤린 이스라엘은 천천히 고사시키기 전략에서 아에 대놓고 죽이기로 바꿔 2009년 새해 벽두부터 전쟁을 해대는데 죽은자만 1,000여명이다.

* 거대 폭탄은 기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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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밀집지역에서 사용금지된 백린탄 무차별 사격에다가 야간사격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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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만 지켜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을텐데 너무나 아쉽다.
그리고 그 역사를 지켜봐야 하는 나도 너무 괴롭다.
이스라엘인들이여. 속히 이성을 찾기 바라며 가자지구 희생자에게 깉은 애도를 보낸다.

* 스스로 악의축이 된 이스라엘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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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1:24 2009/01/16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