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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30 글뻥 나치당과 대한민국의 현재의 모습
- 1932년, 나치는 2번의 국회 선거에서 최대 득표를 얻었지만, 의회에 대해 단독으로는 절대 다수를 획득할 수 없었다.

- 1933년 1월 30일, 주위로부터 설득당한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쿠르트 폰 슐라이허를 대신해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 1933년 2월 27일,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히틀러는 긴급 대통령령을 포고해 비상 사태를 선언,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따라 성립된 기본적 인권이나 노동자의 권리의 대부분을 정지시켰다. 네덜란드인 공산당원 판 데어 루페를 방화법으로 체포, 독일 공산당에 대한 탄압을 개시했다.

- 1933년 3월 5일, 총선거에서 공산당이 크게 후퇴한 반면, 나치는 43.9%의 득표를 얻었다.

- 1933년 3월 12일, 새 국기를 제정할 때까지 검은색·하얀색·붉은색의 구 독일 제국의 국기와 나치당 깃발인 하켄크로이츠(Hakkenkreuz) 양쪽 모두를 내걸기로 결정했다.

- 1933년 3월 23일, 히틀러는 의회에서 수권법(전권 위임법)을 성립시켜, 의회로부터 입법권을 채택해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 1933년 4월 26일,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를 설치, 비판자나 반대자가 나치에 보고되어 나치가 직접 독일 사회를 컨트롤한다. 많은 나치의 정적, 특히 공산당 및 사민당원이 정치범으로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 1934년 1월 30일, 국가 재건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지방자치국가였던 독일을 일원적인 중앙집권국가로 변모시켰다. 주 의회가 해산되어 주 정부 장관(Reichsstatthalter)으로서 나치당 간부가 파견되었다.

- 1934년 8월 2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수상인 아돌프 히틀러가 국가원수인 대통령직을 겸무하여, 독재자로서 전권을 담당하게 된다.

단 2년 사이에 모든 국가의 권력을 한손에 쥐게된 히틀러.
그는 1939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조국 독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의 끝은 패망이었다.

2007년 12월과 2008년 우리는 1932년 독일국민이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저질렀으며 그 댓가를 오늘날 치르고 있는것이다.

선거에 참여치 않은 자여. 그대들이 진정 벌을 받아 마땅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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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꼭 한번 들러서 ^^  http://ighost.tistory.com
2008/06/30 12:58 2008/06/30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