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소총의 구조를 이야기해보면 크게 총열, 본체, 개머리판 3가지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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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열부는 크게 3가지로 총열, 총열덮개, 가늠쇠로 구성되고
본체는 소총의 주요 부품들이..
개머리판은 소총에서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구성됩니다.

최초에는 원거리 조준을 위해 조준경을 달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달아보니... 장난 아니게 높이 달려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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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되면 진짜 조준되나 싶을 정도가 되고 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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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시장이 작아져버려 액서세리 가격이 상승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1000원에 살수 있는 micro-usb에 비해 애플 썬더볼트 어쩌구 케이블은 가격이 넘사벽으로 가버리죠.

그래서 초기에는 이렇게 이런 저런 액서세리 다 달 수 있게 가이드 레일이란 걸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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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어덥터 같은 부품이지요. 암튼 이총에도 저총에도 무언가를 장착할 수 있게되니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액서세리 가격도 떨어지는게 당연했죠.

암튼 그러던중 누군가 본체위에 달린 가늠자와 손잡이를 겸임하는 부품을 빼버리고 스코프 달아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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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깔끔해졌군요.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가이드레일이 표준처럼 사용되자 아에 총열 덮개를 레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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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일은 플라스틱보다 견고해서 액서세리 장착시 잘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상 알루미늄으로 만듭니다.
다시 말해 M4A1이나 M16A4 등 거의 모든 현대 돌격소총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레일시스템 적용 총열 덮개를 가지고 만들어 지고 실재 이렇게 만들어진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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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의 액서세리를 적용하여 임무에 맞는 장비를 탈장착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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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이렇게 만들어진 현대식 돌격소총의 파지법은

- 장갑을 끼고 총열 덮개를 잡던가
- 한때 파지자세가 이상하다고 겁나 까이던 탄창 앞부분을 잡고 쏘던가
- 수직그립을 장착해서 사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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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연발사격하면 뜨겁거든요!

K2C1도 마찮가지입니다.

- 모 언론사에서 전직 특전사인 A씨는 사격 훈련시스템도 바꿔야 하구요 하며 대단한 문제인것 처럼 인터뷰하시던데, 전문가 행세하지 맙시다.
- 이미 한국군은 돌격소총 들려주고 아직도 M1소총 훈련방식을 고수하고 있지 않던가요?

그냥 하부 그립하나 달아주면 될 문제를 전량회수라는 초강수를 두를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하긴 최근 고국에서 들려오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해불가이기도 합니다. 쩝.

2016/10/13 16:09 2016/10/13 16:09
인간사의 모든 질서가 붕괴된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니, 질서 없이 살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를 욕망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이끌어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줄 Leader를 원한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300년쯤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프랑스가 그러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설 그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성적이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른 어떤 포병부대 대위가 있었다.
그 카오스한 상황에서 고향 코르시카 독립운동한다며, 탈영에 가까운 돌립운동하다 탈탈 털려서 잠적한 그였다.
(물론 출처 자료에 따라 중위, 대위라는 주장 등 2가지 상이한 주장으로 갈리지만, Wiki 에 근거하여 대위로 설정한다.)

프랑스혁명 4년차인 1793년의 프랑스 상황을 보자면,
- 1972년 12월 영국은 프랑스로의 곡물, 원자재 수출금지
- 1월 런던주재 프랑스 공사 추방
- 2월 국민의회는 만장일치로 만고불변의 숙적 영국에 선전포고한다. (당시 연전연패 하고 있던 오합지졸 프랑스군의 사정을 보자면 만용이었다.)
- 이에 영국은 즉시 대륙연합 예산을 편성하고 나폴레옹이 제거될 때까지 유럽대륙 연합군의 자금을 덴다. 
* 물론 이전 왕정에서 부터 내려오던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아시냐" 지폐(가치에 비해 3.3%만 인정받고 없어진.. ) 등 각종 문제가 계속 해서 내려오는 상황이었음.

영국에 선전포고하는 국민의회의 만용을 보자, 오히려 왕당파쪽에서 충분한 명분이 되었고,
혁명으로 군에서 쫒겨난 정치가, 군인들의 연합으로 손쉽게 남부 프랑스 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중에 가장 중요했던 전략요충지가 바로 툴롱이었다.
툴롱은 한국으로 치자면 "진해" 정도되는 해군력의 50%가량이 밀집한 전투함 70여척의 모항이었던 것이다.

일단, 혁명군은 다른 지방도시부터 탈환하고 왕당파들을 숙청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툴롱이 프랑스 해군의 가장 큰 해군 기지였기 때문에 이 앞에는 영국과 스페인 연합함대가 12척의 전함으로 진을 치고 봉쇄하고 있었다.
8월 28일 왕당파는 다른 지역의 진압소식을 듣고는 바로 외세를 끌어들이기로 결정, 영국과 스페인 연합함대를 툴롱으로 입항 시킨다.

영국입장에서는 견제하라고 내보냈더니 본진까지 그냥 무혈입성하는 꼴! (당시 프랑스 툴롱에는(70여척이 항구에 있었다. 70여척이!)
입에다 넣어준 떡을 누가 받아 먹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왕당파와 합세한 연합함대는 지상군 수비병령 22,000으로 늘어났다.

당시 진압군은 아비뇽과 마르세이유를 탈환하고 9월 8일 툴롱 서쪽에 도착한다.
이때, 사령관은 흔히들 미술가 출신이라고 알고 있는 "장 프랑스와 카르토"장군으로 9세에 군복을 입고 보병과 용기병의 경력을 가지다, 그림쟁이로 나름 이름을 날린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력전보다 Line to Line 의 전술에 능한 장군이었다는게 프랑스군으로써는 불행이었고, 나폴레옹에게는 행운이었다.

카르토 장군은 가장먼저 올리울스(Ollioules) 고지를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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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후대에 평가가 절하되기도 하지만, 전략가라면 누구나 짚어줄 교통의 사통팔달 지역으로 툴롱 항구까지 약 6km, 바로 앞에는 툴롱까지의 시야가 확보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하지만, 카르토는 전술한바와 같이 그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다.

공격군은 방어군의 3배가 되어야 뭘 해먹는데... 그는 겨우 32,000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시말해, 약 1.5배의 전투력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했고, 전함의 수를 본다면 화력에서는 오히려 비등비등한 수준이었다.

야사에서는 그가 화포사거리를 몰라서 여기서 포를 올려다 놓고 화력전을 수행할 생각이었고 그걸 나폴레옹이 반대하였다고 하지만, 참고자료를 뒤져보고 앞뒤를 맞춰본 결과 화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자신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진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울리우스에 배치된 포가 겨우 1개 포대였다고 확인되는데, 당시 1개 포대라 해봤자 겨우 6문에 불과한 전장식 포이다. 다시말해 그냥 견제용... ㅡㅡa) 

암튼, 이러한 상황에서 남부에서 탄약수송이나 하던 나폴레옹이 온다.
이 상황도 조금은 우연이라 생각되는게, 카르토 장군의 정치장교였던 살리세티는 코르시카 출신으로 나폴레옹의 동향이었고, 마침 포병지휘관인 동마르탱이 부상을 입어 그 자리가 비었었다. (그가 탄약수송임무를 수행했었던 일도 후일에는 엄청난 행운이었다는걸 후에 설명하겠다.)

작전회의에서 아마도 그는 툴롱항을 봉쇄할 수 있는 지점을 공략하자고 했던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병력 1천명을 주면 공략해서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 곳이 바로 항구입구에 존재하는 레뀌에뜨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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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지도로 본 그 때 그 지역, 사거리 2Km의 포로 항구 안쪽에 있는 대부분은 사거리안에 들어온다. 최고의 요충지이지만, 대규모 함대가 존재한다면 한방에 몰살당할 수 있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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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나폴레옹을 믿지 못한 카르토 장군은 병력 5백을 내어주었고, 결국 이 작전은 실패한다.
문제는 이 지역의 중요성을 연합함대가 뒤 늦게 깨달은데 있다.
이에 연합함대는 레뀌에뜨 요새 전면 진압군의 진격로 상에 멀그레이브 요새를 증축하고 3개의 작은 방어 진지를 신설한다.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략적 요충지에 집중해야할 때 자신의 전략을 몰라주는 카르토 덕에 일이 더 커지게 된것이다.

그러자 그는 곧 자신의 상관을 바꿔달라는 요청서를 자신의 연줄을 통해 정치가 빽들에게 보낸다.
그에 대한 회신으로 카르토 장군은 짤리고 의사 출신 도페 장군이 오지만, 전장터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포화에 두동강 나는 모습을 보곤, 전장을 떠나버린다.
세번째로 부임한 뒤고미에는 나폴레옹에게 포병 전권을 주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능력을 높이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9월 툴롱 전역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1차 공략전이 실해하고 멀그레이브 요새의 축성과 진지강화를 바라보며 보병 돌격보다는 자신이 이전에 수행했었던 임무인 탄약수송 임무를 통해 샅샅히 알고 있던 무기고의 위치와 포의 수량 정보를 가지고 주변에서 약 300문의 포를 모으고 전직 포병장교, 포병출신 사병들을 징발한 상태로 약 1달 동안 단 6문의 1개 포대를 300문의 50개 포대로 증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휘권을 받은 나폴레옹이 한일이 가히 놀라울 정도인데, 그는 공성을 위해 포병진지를 하나 씩 늘려서 천천히 진격하는 전법을 채택하고,
11월 20일 자코뱅이라는 포병진지를 만든 이후 28일에Hommes-sans-peur 진지를 12월 14일에Chasse Coquins 진지를 만들어 압박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앉아서 두들겨 맞는 쪽은 영국과 스페인 군이요. 가만히 피해없이 포탄만 날려대는 쪽은 진압군 쪽이니, 연합함대와 왕당파는 진지를 빼았기 위해 돌격하게 된다. 물론 공격군은 격퇴당하고 오히려 영국의 오하라 장군이 포로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12월 16일 충분한 포병화력을 확보한 프랑스는 총 병력 6000으로 총공격에 나서고 새벽3시쯤 1천의 피해를 입고 마침내 전략적 목표가 달성되게 되었다.
마침내 항구에서 가만히 앉아 포에 맞느니 영국과 스페인 연합군은 태울 수 있는 왕당파를 배에 태워서 철수하게 된다.

영국은 철수하며 프랑스해군 함정 70여척중 15척은 나포하고 (2배 장사!) 나머지는 불에 태워 제거한다.
(이후 영국은 프랑스에 대해 해군 우위를 확보하게 되고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나폴레옹을 파멸로 이끈다.)
배에 올라타지 못했던 왕당파 1천명 이상이 진압군에 보복 학살 당하고,
나폴레옹은 이때의 활약으로 무려 준장 (별 하나) 계급을 달게된다.

오늘 몇몇 사료를 분석하고 해외사이트를 뒤져가며 김창준님이 가지고 계신 고민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내 해석은 이러하다.

- 전략적 관점에서 툴롱은 자립이 불가능한 포위상태였고, 그들이 살 길은 항구를 봉쇄중인 영국 스페인 연합함대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 당시 주력이었던 24파운드 포는 현대 기준으로는 경량포이지만, 당시의 수송능력을 볼때 중포에 해당하고, 사거리는 2Km 안밖이었다.
- 나폴레옹은 전역에 참가한 이후 처음부터 전략적 목표 달성은 영스페인 연합함대의 추출이었고, 그는 항구의 폐쇄만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다.
- 하지만, 카르토는 보병/용기병 출신으로 방어진지 하나씩 돌파해 가는 정공법을 채택하게되고 결국 긁어 부스럼 만든 격으로 멀그레이브 요새등 방어를 강화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 나폴레옹은 이 작전에서 공훈을 세우지 못하면 또 한직은 전전해야 하는 신세였고, 그는 지금까지 한직에서 쌓은 정보와 인맥을 동원해 인근 지역의 무기고를 털다시피해서 최종 300문의 포를 모았다.(그의 신기에 가까운 업적은 후술한다.)
- 하지만, 카르토는 나폴레옹의 화력전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보병돌격 등의 삽질만 강행했다. (당시의 머스킷의 화력 명중도 등을 고려한다면, 1~2방 쏘고 보병돌격이 일반적이었다.)
- 카르토가 짤리고 나서 도페장군이 오지만, 곧 전장을 떠나고 뒤고미 장군은 이러한 나폴레옹의 화력전을 찬성하고 포병지휘권을 나폴레옹에게 일임한다.
- 나폴레옹이 택한 전략은 전형적인 공성전이었다. 한칸 씩 전진하고 포병으로 적 진지를 때리는 방법이다.
- 위의 예는 영화 라스트 모하칸에서 상세히 묘사된다.


- 현대전에서도 대규모 공성전이 존재했는데, 멀리 독일군이 세바스토폴에서 만슈타인은 1300문의 화포를 집중하여 공략에 성공한다. 가까운 예로는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민은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의 요새를 하나씩 공략하고 부품을 분해하여 운반한 화포를 다시 조립하여 공성하였다.

- 전투의 결과 연합함대와 왕당파는 총 2천의 병력을 잃었을 뿐이다. 2만 4천중 9%의 병력손실을 입은데 비해, 프랑스 진압군은 12.5%에 달하는 4천의 병력을 잃었다.

* 나폴레옹의 툴롱 포위전 정리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레뀌에뜨 요새를 탈환한것이 아니다.
그가 도착한 9월 16일 프랑스 집압군은 고작 4문의 캐논포(직사포)와 곡사포 2문을 가진 1개 포대가 전부였고, 지휘명령계통도 엉망이어서 지네 맘대로 포대 위치를 변경하거나 할 정도였다.
나폴레옹이 탄약수송의 한직을 돌아다녔다는 것을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곧 이 경험을 토대로 3일만에 14문의 캐논포와 4문의 곡사포를 확보하여 총 3개 포대를 만들었고,
매일 마르세이유로 부터 5천 포대의 모래자루를 날라서 방벽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확보한 울리울스에 80명의 대장장이를 모아서 포와 포탄을 조병하였다. 그러나, 화약이 문제였다. 
화약이 확보되지 않은 포대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나, 보급창의 수송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여기서도 나와서 보급창과 싸워가며 화약을 확보한다.
10월이 되자, 총 11개의 포대를 배치할 수 있었다.
그는 100문이상의 포를 가지고 10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6주간 24시간 리틀지브롤터라 불리던 영국/스페인의 방어선을 두들겨 버린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가 보유한 포는 300문이었다.
이렇게 모인 300문을 최초로 집단 운영하였다. 그가 유럽최고의 화력전 전문가라 칭하는 이유이다.
일개 대위가 1개 포대에서 시작하여 총 50개 포대를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 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참고로 한국군 포병전력중 견인포인 155mm 는 총 1500문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습이 아닌 지연전의 과는 분명해 보인다.
이때 잃은 70척의 전투함은 이후로도 복귀되지 못했고, 영국과 비등비등하던 해군력은 이후로 영국에 열세로 놓인다.
영국은 이러한 우위로 대륙을 봉쇄하게되고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봉쇄령으로 맞서지만, 러시아의 영국 무역을 응징한다며 모스크바로 진격.
이후 패망 테크를 탄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건,
첫째, 나폴레옹이 탄약 수송임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이다.
둘째, 툴롱은 나폴레옹을 장군으로 만들어 줬지만, 이때 툴롱에서 프랑스 함대의 손해를 어떻게해서는 최소화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나머지 프랑스 함대를 동원하여 역포위했다면? 그래서 항복을 받아냈다면? 3개월이라는 전투기간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인간사 승패는 "운"이라는 걸 확인하는 역사의 한장면이었다.

2014/09/08 21:03 2014/09/08 21:03
디코가 유료화하면서, 방랑중에 찾은 비밀사이트가 벌써 2억명이라니 감회가 새롭군요!
절대 방풍잠바 얻자고 이런글 남기는 건 아닙니다.
중년의 해병이 유일하게 쉴수 있는 아지트라 더욱 애정이 갑니다.
앞으로 5억, 10억 방문 히트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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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만세!
2012/04/02 00:52 2012/04/02 00:52
얼마전 MB가카의 부카니스탄 병사들이 나름 공을 들여서 영어로 제작된 동영상을 공개하였는데...

뜨아~ 했었다.
먼저 저들이 자신만만하다고 꺼내놓은 장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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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T-54다.
시제차는 1945년에 공개됐고, 생산댓수가 무려 10만대정도로 추산된다.
무장은 100m로 중동전에서 M-47급에 발리다 못해 처절하게 깨진 경험을 가진차량이다.
도로에서 56km/h, 야지에서 25km/h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전차로...
엔진이 무려 520마력짜리이다.

현재 한국군의 주력전차인 K-1 (K-1A1이 아니다.)은 105mm강선포에, 레이저사통장비, 1200마력 엔진을 장착하고, 도로기동 65km/h, 야지기동 40km/h의 기동성과 복합장갑이 기본이다. -_-;;
주력이 아닌 도퇴되고 있는 장비인 M-48과 비교하더라도...
M-48의 유효사거리는 1800야드인데 비해, T-54/55는 1000야드에 불과하다. 즉, M-48로 멀리서 때리는데 T-54/55는 대응 수단이 없다! 이런 전차가 약 1600대 운영된다고 하니... 그냥 움직이는 관에 불과한 실정이다.
물론 T-54/55는 사통장비도 없다. (진짜 불쌍하다!)
광학장비로 조준해서 쏴야하는데... 풍속, 풍향, 주포의 처짐까지 계산해서 쏴대는 K-1과의 전투가 어떨지...(또 불쌍하다.)

그리고 부카니스탄 군인들이 들고나온 자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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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를 하고 있는 자주포의 사진인데...
자동장치도 없는 포에 열심히 손으로 장전해서 쏘는 자주포다.
분당 끽해야 2~3발, 우리 K-9은 분당 9발이다. -_-;;
당최 이걸가지고 한국에 전면전을 하겠다고 하는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155mm 견인포에 비견되는 부카니스탄 견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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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이나 매달려야 포 한발 쏠수 있다!
이걸 손으로 장전해서 쏜다고 생각해보자.
거기다가, 반격탄 날라오는 날에는 8 동무들의 무덤이 될뿐이다.

이제서야 부카니스탄군이 연평도에 그렇게 많은 포를 쏘고도 더 큰 피해를 못준데 비해 대응사격에 40여명이 죽거나 다친 이유를 알것같다.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낭...

아참~ 다음에 쏠때는 어금니 꽉 깨물고 쏴라.
가카 때려잡으면 전쟁에서 이길것 같지?









2012/03/10 22:33 2012/03/10 22:33

요즘 정부여당의 고위당원들이 한마디로 지뢀이다.

대표적으로 황모의원
"황 의원은 그러면서 "군인 사망자가 2명 있다고 하지만 사실 전사가 아니"라며 "(사망한 장병 중 한 명은) 대피호에 들어가 있다가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파편에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1명의 사망도 전투 중이 아니라 휴가에서 복귀하던 중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전사'는 아니라는 것이 황 의원의 설명이다."

정부 여당이라는 작자들이 그것도 우익이라고 좌빠척결에 앞장서는 작자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고 떠들고 다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방개혁 2020을 한번 뒤집어 보면 결과는 간단해진다.

1. 육군
- 군단과 사단 대폭 통폐합 및 기동력, 타격력, 생존력 강화, 17만 7천 명 감축
- 전방군단 감축 및 작전반경이 대폭 확대된 기동군단 창설
- 지상작전사령부(2015년 계획.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와 제2작전사령부(이미 2009년에 창설됨) 창설.
- 유급지원병의 비율 증가 및 징집병의 비율을 60%로 축소.
2. 해군
- 한반도 전해역 감시 및 타격능력 확보
- 잠수함전단과 항공전단이 잠수함사령부와 항공사령부로 격상
- 기동전단 편성
3. 공군
- 북부전투사령부 창설
- 전투기 감축(Low급 500여대에서 High-Low Mix의 420여대로), 공중급유기 및 조기경보통제기 확보
4. 해병대
- 대대급에서 여단급으로의 상륙작전 능력확보
- 해병여단 및 연평부대 해체, 4,000명 감축

막상 국방개혁 2020의 주요내용을 보면 완전 군을 작살내는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적 감축 질적 향상은 눈에도 안보이나 보다.
그중 육군은 거의 반을 들어내야 할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육방부 욕쳐먹는 우리의 잃어 버린 10년의 주인공인 육방부 출신들께서는 눈 뒤집어 지는 거다.
육군의 경우는 병력의 반 정도를 들어내야 할 판인데 어찌 눈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짓이 MB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방개혁 2020에 손을 덴다.

이렇게...
물론 국방개혁 2020의 원초적 한계는 그 전에 남북통일과 주한미군 감축 등 안보상황의 대변환이 올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따라서 수정안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그 방향과 막대한 예산을 지원할 의지인 것이다.
1.국방개혁 전체 예산을 621조에서 599조 원으로 22조 원이 삭감됨. 50만 명이 아닌 54만 명으로 군병력을 감축.
2.통일을 대비하여 동원 사단 4개 사단 증설 (24 + 추가 4, 총 28개 사단).
3.예비군 감축을 150만 명이 아닌 185만 명으로 감축 분 줄임.
4.한·미 연합체제를 지속하기 위해, 2012년 폐지키로 했던 카투사(3400여 명)를 유지 방침.
5.영관급 이상 고급 장교의 증원을 제한하고, 부사관을 늘려 고가장비를 담당해 인건비를 절약하며 인사적체를 예방함.
6.저고도 천마 대공미사일개량사업 대폭 축소.
7.신형 전차인 K2 양산규모를 2개 기동군단 800대 분에서 1개 기동군단 400대 분으로 축소.
8.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 등 전략적인 정보수집 수단의 도입은 연기. 대신 한·미 연합 전력 최대한 활용.

그렇다. 현재의 해병대는 대대 상륙능력밖에 없는데 4천명 줄여서라도 헬기 달라고 했고 연대 상륙 능력까지는 갖추겠다고 뼈를 깍겠다고 했었다.
해군도 기동전대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공군도 마찬가지 한반도 이남을 벗어 나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육군이 문제다.
육군입장에서 병력 감축은 곧, 장군 자리의 감축. 다시말해 밥그릇 축소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신형전차 K2의 2개 기동군단분보다 보병의 숫자 유지가 더 중요하며
이들의 입장에서는 천마 대공미사일 따위보다는 보병의 숫자 유지가 더 중요하며
이들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호크 따위보다는 보병의 숫자 유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번 숫자를 다시 한 번 봐보자.
정확히 22조원이 빠졌다.
22조.

어디서 많이 보던 숫자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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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안들어간다고 했던 4대강 사업자금이 22조 2천억. 현재는 22.7천억.
오케이?
22조원이 국방현대화에서 삭감된 금액 22조원이 바로 4대강의 예산의 정체였다.

즉, 현재 정권의 주요 사업인 4대강은 해병대에 헬리콥터 사줄돈으로 해군의 잠수함 사줄 돈으로 공군의 공중급유기 사줄돈으로 글로벌 호크 사줄돈으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올들어 사고가 2번이나 났다.
미치고 팔짝뛸수 밖에...
여론이 바보도 아니고 그 돈이 그 돈인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삭감된다고 길길이 날뛴 이상희 국방부 장관 모가지 쳐가면서 쟁겨둔 22조원인데 이 출처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빼고 아무도 없는데...
군함에 구형 소나 달아준 덕에 해병대에 40년된 구형 대포병 레이더 빌려준(그것도 육군에서 쓰던걸 빌려준!!!)덕에 작살이 났으니 어찌 뒤가 가렵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좀 못싸웠으면 제대로 싸우지 못했으면 병사들 욕하면서 길길이 뛸텐데 너무 잘싸웠다.
너무 잘싸웠는데 북쪽으로 70m 오차 생기고 (40년 된 구닥다리에 무슨 정확도를 바라는가? 진공관 껴서 돌아갈텐데..) 그렇다고 제대로 전투기로 갈겨버린 것도 아니니 어쨌거나 욕먹여야 할텐데 제대로 안되지 화살은 위로 올라가지.
어쩌겠어? 지들도 밥그릇 챙겨야 할텐데...

그러니 하는 짓거리가 이런 짓거리다.

"시바. 해병대 쓉쉐들이 벙커 밖에서 담배 펴대다 죽었다!" (개호로 쉐끼)

그 분이 너 같은 개호로 쉐끼 지킬려고 호국의 령이 되었단 말이냐? 개쉐꺄!!?

2010/12/13 00:29 2010/12/13 00:29

솔까말 나는 포병이 정확하게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사격을 하고 적을 파괴하는지 모른다.
나는 보병 소대장 교육을 받았고 실무가서는 화학소대장이었으며 중위달고는 상황실에서 부대의 각종 필드매뉴얼을 흘터 보았을 뿐이며 작전과에 배속되어 있는 관계로 통합 화력을 어떻게 구사하는지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먼저 화력지원 요청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보병의 화력지원은 크게 포, 항공 2가지이다.
포는 또 다시 함포와 지상화포, 지상화포는 또다시 박격포, 견인/자주포로 나뉜다.

1개 소대가 바로 즉시 지원요청가능한 화력은 중대에 배속된 60mm이며 중대는 대대에 배속된 81mm 또는 4.2"를 지원받을 수 있다.
거기에 중대급이상에는 앵그리코라는 화력통제 장교가 따라 붙는데 이들이 하는 일이 바로 항공/함포 유도임무이다.

미사일 같은거 그런거는 일개 보병은 구경도 못한다. 잘해봐야 155mm가 떨어져 주면 땡큐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내방어진지에 떨어지는 화력으로 적 작전부대의 규모를 판단할 수 있기도 하다.

이제 본론이다.
가용가능한 모든 화력은 크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화력유도를 한다.

1. 적 위치(보통 좌표) 불러주고 화력요청
2. 화력 승인나면 FDC라는 지휘차에서 욜라 빨리 사각, 편각, 장약 산정해서 각 포반에 하달.
3. 포반에서는 하달된 사각, 편각 넣고 장약 넣어서 1발을 먼저 쏨.
4. 화력 요청한 관측장교 또는 관측병 또는 보병부대에서 착탄위치를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수정요청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우로 100, 위로 100이면 내가 관측하고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100m더 가야하고 적 방향 100m 더가야 한다는 이야기 였던 것 같다.)
5. FDC에서는 편차집어넣고 효력사(이게 바로 TOT이다.) 요청
6. 포반 전체가 효력사 발포

이다.
왜 이렇게 해야하는가?
첫째, 공기의 밀도에 따라 사거리가 다르다. 곡사포는 고도가 높이 올라가는데 그 고도의 공기밀도는 수시로 변한다. 따라서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것은 우연의 일치일뿐 자연의 법칙은 아니다.
둘째, 장약의 연소속도와 배출되는 가스의 양이 다르다. 일치한다면 아마도 그건 외계인의 기술.
셋째, 아무리 정확한 GPS도 1m의 오차는 존재한다. 민수용은 무려 10m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15분만에 포탄이 떨어지는 그 가운데 젊은 해병대원들이 포탄을 어깨에 이고 달려 포에 밀어넣고 40년된 대포병 레이더에 의존해서 15km의 목표에 대해 발포하였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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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70m 밖에 오차가 나지 않은 상황이다.
관측 장교 또는 병이 오차를 수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부터 TOT를 쏜 것치고는 지근거리탄이 2발 정도 들어간것으로도 잘 쐈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이는 정보자산 획득을 게을리한 상급부대 더나아가 현 정부의 문제이지 산뒤를 볼 수 없는 아 해병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는 미군에게 맡기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군사전술적 발상이 낳은 오류인것이지 절대 우리 군이 약해서 저렇게 맞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호크만 개머리 상공에 떠있었어도 그것을 링크한 현지 부대의 장비만 제대로 갖춰졌어도 니미럴 저런 오해는 안받아도 되는데 마치 우리군이 약해서 두들겨 맞고도 제대로 대응 못했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군면제자 티내는 짖좀 그만하자.

나아가 현재 이렇게 두들겨 맞고도 아무런 대응 못하는 이유는 쪽팔리게도 현 정부가 그렇게 미루려고 했던 "전시작전권 회수"와 관련 있다는 이야기를 왜 안하는가?

배임을 한자들이 목에 피토하면서 전시작전권 회수 연기를 외친덕에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나 두들겨 맞고도 아무런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는것 아닌가?

또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왜 해임되었는지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국방비 삭감에 맞서다가 재경부 출신 장수만 국방부 차관에게 뒷통수 맞고 물러난 사건이 있었고 그 뒤를 이어 김태영 장관이 들어간것 아닌가?

연평의 실무자들이 그렇게나 포병 증강, 대포병 정보자산 증강을 외쳤건만 미국을 이용하면 된다는 논리로 연평도의 우리 해병들에게 총알 받이 시킨것은 누구 잘못인가?

총체적으로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딴나라 국개위원들이나 상황 뒷수습도 안된 상황에서 장관을 내치는 파란집 관료들이나 그것을 용인하는 사장님이나 짜증나는건 매 한가지다.

마치 부하 직원들은 알아서 몸빵하라(말이 몸빵이지 목숨내놓으라는 이야기.. 그것도 아주 싼 월급에..)는 것이 말이 된는 일인가?

거기다가 더 삽질은 MLRS 까지 연평도로 쳐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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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 작전범위를 커버하는 전술자산을 왜 겨우 15km 남짓한 북한 포병에 대응하기 위해 때려 넣냔 말이다.
MLRS는 사거리 70km에 ATACMS 를 쏠경우 사거리 300km인데 이런 무기를 대대 작전 범위에 때려 넣어서 어쩌겠다는 이야긴지 당췌 국방 정책 관련자들의 대가리를 파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리고 "전투기가 떴으면 포격했어야지"라고 하는데 병신도 상병신이 따로 없다.
 
전투기가 넓은 면적의 범위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CBU라는 집속탄 종류를 사용해야 한다.

이건 멀리 날라가는 병기가 아니라 상공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북한 영공을 들어가라는 것인데 "니미.. 진짜 전쟁 함 해보겠다는 것인가?" 차라리 그럴 것이라면 서해에 주둔한 해군 함대를 동원했었어야지.
이왕 하는거 해군 함대 올려 보내고 대한미사일 목표추적 시그널 들어오면 공군으로 깨버리고 아주 함포로 쳐발라야지!!!
(아~ 죄송. 한국 구축함으로는 함포사거리가 안되는 군요. 니미럴)

정말 요즘 돌아가는거 보면 짜증왕창이다.

처음에는 한품도 안들어간다던 4대강이 지금 22조원 들어가는데 이거면 국방 자산을 얼마나 더 많이 확보 할 수 있는 것인지. 이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무료 급식할 수 있는지. 이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IT 혁신/물류혁신을 할 수 있는지 생각도 없이 땅파기에 열중하는 정부 관료들의 문제임에도 자신들의 경영의 오류를 실무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행위에 분개한다.

PS.
전쟁은 보병의 숫자로 하던 시대는 한국전쟁 이후로 끝났습니다.
전쟁은 정보와 화력으로 하는 것이며 보병은 깃발을 꽂기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미 월남전때 우리군은 이러한 전쟁을 경험했으며 수많은 월남전의 무훈도 보병대 보병의 전쟁이 아닌 화력대 보병의 전쟁을 수행했으며 전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최강 미군도 현역이 고작 10개 사단입니다.
만약 이 말이 틀렸다면 미국은 이라크, 아프칸에서 박살나야 했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국방정책은 바뀌어야 하며 현행 몇 십개 사단을 운용하는 현 정책은 한국전쟁이 낳은 기형일 뿐이며 인력을 감축하고 대신 그 만큼 정보자산, 기동장비, 화력으로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PS2.
참고로 이라크에서 기습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C-RAM.
소형 포탄, 박격포, 로켓을 격추시켜 버림 -_-b
이런거나 연평도에 넣어줘야지!!!!

2010/12/03 16:28 2010/12/03 16:28

게릴라 또는 특수부대의 통상 적대행위는 무조건 Hit&Run이다.
이때 필요한 전술이 바로 "매복"과 "기습"인데 그중에서도 느닷없이 BASE로 날아드는 박격포탄과 미사일은 골치거리였다.
보이기라도 하면 제압할텐데 몇 km 떨어진 곳에서 쏴대는 포탄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군과 미군의 이러한 기습 대항 전술이 박격포 사거리내에 매복 정찰을 나가 적의 이동이 포착되면 화력유도 및 제압사격으로 사전에 기습 의도를 차단하곤 했었다.
나아가 한국군은 예상 사격지점에다 매일 공세적인 포격을 퍼부어 버리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기습 전술 자체가 영국의 SOE와 미국 OSS(미국정보전략국, 이후 1947년 CIA로 개편)가 대독, 대일전쟁을 수행하기위해 열심히 전세계의 게릴라를 훈련시킨 덕이다. (이후의 각종 분쟁지역에서 자신들이 훈련시킨 방법에 엄청 깨지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부비트랩이다. 요즘은 IED라고하는 급조폭발물로 또 엄청 당하고 있지만...)
IED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방법이 없지만 날아오는 포탄에 대해 요격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자 기습포격에 대항하는 무기체계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미국의 "Sky Guard"이다.

레이더와 연동된 고출력 레이저로 포탄, 미사일을 녹여서 폭파하는 방식이다.
레이시온사의 개발품으로 미국내 주요 공항에는 실전 배치 하고 있고 미군 및 영국군이 도입예정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이라크에 실전배치되어 있는 C-RAM이라는 녀석도 있다.
20mm 대공발칸포인 CIWS를 격추체계로 사용하는 방어 시스템이다.

다음은 C-RAM의 이라크 실전모습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매일 박격포탄과 로켓에 테러당하는 나라의 경우는 국가차원에서 소요를 제기하는 상황. C-RAM이 대공포 체계라면 이스라엘의 Iron Dome은 대공미사일 체계로 기습 포격에 대비하는 개념이다.


군사 기술의 발달으로 정규군의 교전거리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초기 항공전만 하더라도 교전거리는 수백 미터에 불과했지만 AIM-9 사이더와인더의 개발이후 수km로 AIM-7 스페로우는 수십km로 기술의 발전에 맞추어 교전거리는 계속 늘어난다.
함대전도 마찬가지다. 그옛날 배와 배를 충돌시켜서 올라타서 싸우던 시대에서 화포의 발달로 점차 멀어지더니 이제는 수평선 넘어 적함을 격파하는 시대이다.
아무튼 위의 시스템이 많이 사용되면 될수록 점차 장거리 타격무기 체계는 바보가 되어 갈 뿐이다.
누가 많은 탄약을 소모할 수 있는가?의 게임이 되어버린다.

결국 보병의 전투 수행횟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베트남전 이후 대부분의 전투를 시가전이라는 밀림아닌 밀림에서 수행되는 덕에 교전거리는 갈수록 짧아지면서 IED에 대한 피해도 증가되고 있어 이역시 반작용 측면에서 볼때 재미있는 부분이다.

2010/01/08 12:43 2010/01/0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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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미국이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고 발표했을때 1인당 무장단가는 170달러 였다고 한다.
1964년 통킹만사건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시작했을때 1인당 무장단가는 1112달러
2003년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전쟁에 돌입했을때가 1만 7472달러
그리고 10년후쯤 미래에는 일반병이 2만 8000달러, 특수부대가 6만달러로 예상된다고 한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물가 증가율을 보면 근 30년간 평균 7.09~7.11%의 물가 상승율이 있었고 복리계산법중 복리이자 7.2%라면 10년뒤 자산가치는 2배가 된다는 가설을 적용시켜봐도 될 정도의 오차를 보이니 한번 적용시켜 보자.
자산가치가 같으려면 1960년-1940년 20년이니 4배의 차이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170달러의 4배는 680달러이니 약 2배의 GAP이 발생한다.
다시 현대의 2000년-1960년으로 40년의 차이가 있는것을 보면 총 16배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계산해보면 1112달러의 16배수로 17792달러로 복리법칙이 들어 맞는다. 무장이 늘어나긴 했지만 장비의 가격이 싸졌다는 이야기다.
10년 뒤를 생각해봐도 2배정도면 3만 4천 달러정도여야 하는데 장비의 수는 더 늘어나지만 가격은 2만 8천달러로 더 싸진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1960년대 우주 경쟁이 시작되면서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정보화 혁명이라는 것이 조용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보화 혁명이 대중화된것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로 공산품 가격이 폭락하기시작한 때와 흐름을 같이한다.
다시말해 현재 일반 넷북에 있는 아톰 CPU만 하더라도 20년전에는 국가간의 전쟁을 일으켜서 뺐어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혁명이었으리라. 즉, IT기반 생산품의 가격은 2년~3년 마다 같은 성능의 제품이라면 Half의 가치도 인정받기 어려워질정도로 가격 폭락한다는 의미이다.

다시말해 AP통신 및 미국방부는 단순 달러로 1인당 무장비용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복리법칙중 72법칙을 적용하면 2차대전과 베트남전과의 GAP이 존재할지언정 그 이후의 무장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40년전의 가치로 현대의 병사는 더 많은 무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참고 : 횡설수설해본적 뿐임... 신흥개발도상국으로 고도성장했던 한국에 미국의 물가 인상율을 적용하는것 부터가 난센스임, 베트남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군의 무장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큼)

2009/12/15 11:22 2009/12/15 11:22
Ah-64라는 세계최강의 공격헬기가 있다. 그런데 최강이라는 것이 왜 생겼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먼저 탐지능력이다.
AH-64D는 기본형과는 다르게 머리위에 레이더 돔을 달고 있다.
이게 뽄이 아니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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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최대 1,000개의 목표를 탐지하고 256개의 표적을 추적 분석할 수 있다. 차량도 차륜식인지 괘도식인지도 파악하고 위치, 속도, 방향도 알아 낸다. 항공기 역시 호버링하고 있는지 비행하고 있는지 고정익인지도 알아 낸다.
그래서 위험등급이 부여된다.
위험 등급이 부여되면 AH-64D 롱보우 1대가 주변의 24대의 아파치에게 위험등급이 부여된 표적을 네트워크로 알려준다.
이까지는 그냥 레이더 기술만 좋으면 될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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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서는 바로 위에서 보이는 헬파이어가 거의 동시에 발사된다.
즉, 아파치 1대는 16개의 지상표적에 대해 동시교전이 가능하다.
이말인 즉슨 AH-64D 1대 + AH-64A 24대가 동시에 400발의 명중률 99% 짜리 헬파이어를 발사 해서 적 기계화 부대를 무력화 시킬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거기다가 미쿡이라는 나라가 어떤나라인가?
베트남전에서 숯하게 헬기 떨어뜨려본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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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실이 무려 5,000여기에 달하니 지 아무리 부자나라라 하더라도 미치고 팔짝뛸판이었다.
그래서 나온것이 초저공 비행이다.
헬기가 높이 날아가면 발견될 확률도 높고 거기에 매복한 대공포나 SA-7같은 견착식 대공미사일이 날라 뎅기는 마당이니 어찌겠는가? 무조건 기는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쿡은 스텔스가 실용화되기 전까지만해도 저고도 비행최곳! 했던 것이다.
그덕에 아파치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된다.
먼저 60m이하 저고도 비행을 위한 LLF(Low Level Flight) 능력과 고도 15~30m로 비행하는 지형추적비행 (Contour Flight)에다가 지표 15m로 비행하면서 장애물을 우회하는 초저공 포복비행(Nap of the Earth) 능력을 보유한다.

안정성?
이것도 아주 죽인다. 엔진열을 식히기위해 설계된 냉각시스템은 160도 이하로 배기열을 낮춰주는데다가 엔진은 동체와 약간 떨어뜨려 Twin으로 설계/장착한다.
거기다가 모든 시스템이 2중화 되어 있어 측면으로 한방먹더라도 반대쪽 시스템이 살아 있어 비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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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개발방안이 가관이다.
탐지장치도 레이더도 초저공 비행능력도 없다.
그냥 "수리온 + Alpha" 일 뿐이다.

조종사를 하루아침에 키울수 있는 것도 아닌데 조종사의 생존성을 극대화 시켜주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Only 수리온 + 알파로 공격헬기 만들어 보겠습니다."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은것은 최전선에 나가 싸우는 기체하나에 목숨걸고 있는 전투 조종사에 대한 배려는 언제나 만들것인가?

* 조국의 국방산업에 열심히 죽을 고생하시는 여러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만 정말 아닌건 아니라고 하고 싶어서 포스팅합니다.
2009/10/27 01:10 2009/10/27 01:10
무기의 개발사를 흩어놓고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보인다.
특히 최고를 지향하다는 것도 모자라 오버테크놀로지로 시제품만 내놓고 결국 좌초되는 경우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중 하나인데 그렇게 실패 아닌 실패를 되짚어 보자.

1. MBT-70 전차
원래는 MBT-70이라는 미국의 M-60 과 서독의 레오파드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차기전차 개발프로젝트로 멋찌게 출발한다.

* MBT-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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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M-48/M-60 등 패튼 시리즈가 주력으로 약 2만 5천대 가량 있었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소련의 경우는 T-55만 10만대 이상... (이 전차가 파생형까지 정확히 몇대나 생산됐는지 알길이 없다.) 따라서 2세대 전차를 더 찍어내기보다는 3세대 전차로 업그레이드 하는 편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개발된 MBT-70은 3000m에서 적 전차 격파하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목표를 세운다.
목표는 간단했다. 이제 방법을 찾아내는데...
첫째, 152mm 짜리 인류 전차 사상 최대의 거포 장착
둘째, 승무원 1명 줄이면 전차에 태울수 있는 병력이 그만큼 늘어나니 자동장전장치 도입
셋째, 머리내밀고 기관총 쏘다 전차장이 많이 죽으니 유선조종 20mm 기관포 달기 (참고로 브레들리 장갑차 주포가 25mm임)
넷째, 전차장이 표적 지시하면서 포수가 조준하는 헌터킬러 기능
다섯째, 레이저 거리 측정기
여섯째, 통신장치 고장대비한 운전수를 포탑으로 올려놓기
일곱째, 대전차 미사일 발사도 가능하게 하기
등등등 나는 안죽고 적을 3000m에서 작살내기에 모든 오버테크놀로지가 적용된다.
그결과 개발비 및 생산비 급등 크리 두들겨 맞고 독일이 GG 치자 안그래도 베트남 전쟁때문에 정신없이 돈 써댄 미쿡 횽들마저 GG
결국은 다운그레이드형 M-1전차 개발/채용이었다.

* M1A1 전차 (다운그레이드한 M1전차만한 전차가 아직도 거의 없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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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H-56 공격헬기
UH-1과 CH-47이 베트남전에서 대활약하지만 대활약의 댓가는 컸다.
헬리콥터가 겨우 하늘을 나던때 1950년대 나온 헬기가 기동성이 좋은것도 그렇다고 방어력이 좋은것도 그렇다고 무장이 좋은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육군에서 고민한 것이 고정익은 미공군의 영역이니 회전익인 헬기로 지상제압하자였다.
처음 UH-1의 엔진과 꼬리부분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공격용 전투헬기를 만들어서 배치한것이 AH-1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AH-1의 목적은 수송헬기의 호위였고 수송헬기를 공격하는 적 지상군의 제압이었다.
이어서 나온 개념은 수송헬기 호위 + 근접화력제공 + 적 공격헬기 제압 등등등 거의 다목적 전투기 수준의 목표를 설정한다.
그결과 탄생한 AH-56 샤이언!

* AH-56 의 후미로 추진을 위한 프로펠러가 하나더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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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H-56 의 비행. 기수만 보면 AH-64와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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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407km/h, 항속거리 3880km, 무장 5.2톤으로 현대화 하여 나름 많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AH-1F의 제원이 속도 277km/h, 항속거리 510km에 비하면 괴물 그자체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생산비의 급상승으로 인해 크리티컬 맞고 다운그레이드형인 AH-64를 따로 제작하게 된다.
* AH-64 아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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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111 전투기
미군에서 고정익을 전문으로 운용하는 곳은 미공군, 미해군, 미해병항공대 등 3군데가 있다. 그중에 미해군과 미해병대는 거의 유사한 기종(거의 동일한 모델을 사용) 을 운용해 왔고 2차대전때의 항공모함에 해병항공대가 운용될 정도로 비슷한 부류들이라서 별 무리가 없지만 미공군과 미해군은 서로가 완전히 상이한 요구사항으로 개발과 운용이 따로 되고 있었다. 어찌보면 F-4 팬텀2의 경우가 이례적으로 동일한 기종을 사용한 경우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해군에서 채용한 이녀석을 보던 미공군이 F-100 센튜리온 시리즈를 버리고 채택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지만...
* 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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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개발비 절감과 대량생산을 통한 생산비 절감이라는 목표가 정해지면서 미공군과 미해군이 처음으로 같이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탄생하게된 F-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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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스팩을 보면 기가찬다.
첫째, 거의 모든 무장을 기체에 내장되면서도 외부 파일런에 장착할 수 있다
둘째, 음속 2.5의 속도이며 초저공 비행이 가능하면서 음속 1.2의 속도
셋째, 거기다가 단거리이착륙 (STOL) 기능
넷째, 전투기와 폭격기의 다목적
다섯째, 최초의 실용 가변 날개 채용
여섯째, 조종사 탈출을 위한 탈출 캡슐 채용

당시로써는 오버테크놀로지를 적용한 F-111은 결국 그 크기때문에 해군에서는 채용되지 못하고 해군은 다운그레이드형인 F-14를 채용하게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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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공군조차 너무 커서 전투기로 사용은 포기하고 종심폭격기로 사용하다가 후에 전술폭격기로 후에는 결국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미쿡의 삽질로 만들어졌지만 그 다운그레이드형은 한시대를 풍미하다 못해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목표수준을 달성했었던 AH-56 또는 MBT-70이 실재 배치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재 배치되었다하여도 F-111 수준을 벗어자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2009/09/17 18:03 2009/09/17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