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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1 글뻥 세계 각국의 인질 구출작전

1. 이스라엘 "사베나 572편"
1972년 5월 6일 검은 9월단 소속의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로 가던 여객기 사베나 572편을 납치하자 다음날 새벽 4시 정비원으로 위장한 특공대 16명을 투입 10분만에 인질범 2명 사살, 2명 생포하였고 승객 2명이 총격전 도중 사망하고 1명은 부상하였다. 대원중 1명이 부상하였지만 곧 회복함

2. 뭰헨의 참극
1972년 9월 5일 8명의 검은 9월단소속 인질범이 이스라엘 선수단촌에 난입 저항하던 2명이 죽고 총 9명이 인질로 잡힌다.
오전 9시 사태의 전말을 알게된 서독정부는 즉각 경찰 대표로 협상을 내보냈고 뒤로는 국경수비대 특수부대원(GSG-9부대)을 선수로 위장시켜 접근시키지만 TV에서 생중계하는 바람에 범인들이 의도를 알아차리고 철수하게 된다.
저녁무렵 인질범들은 카이로로 이동하겠다고 했고 이에 서독정부는 동의하여 NATO기지에 항공편을 준비한다. 물론 저격수와 승무원으로 위장한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그날 밤 10시 반쯤 그들을 수송하는 UH-1헬기가 NATO공군기지에 도착했고 범인이 4명째 내리자 저격을 시작했다. 인질범의 숫자가 4명으로 잘못안 것이다. 이덕에 범인들의 저항이 시작되어 인질 9명이 모두 죽고 그들을 수송하던 헬기는 수류탄에 잿더미가 되었으며 조종사 역시 그자리에서 죽었으며 경찰 1명도 전사한다. 새벽 1시경 총격전이 끝난뒤 3명의 인질범을 붙잡았다. 이에 격분한 이스라엘은 모사드를 동원하여 테러로 응징한다. 이것이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에도 묘사된 "뮌헨"의 전말이기도 하다.
* 경찰과 협상중인 검은9월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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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류탄에 파괴된 서독의 수송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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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남기고 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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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라엘 전설의 "엔테베"
1976년 7월 4일 C-130 수송기 4대와 지휘기인 보잉 707 2대가 이스라엘 본국으로부터 4,000km나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상공에 도착했고 그중 C-130 4대가 착륙하여 100여명의 이스라엘군을 쏟아 내었다.
인질범 7명을 사살하고 우간다군 20명, 10여기의 우간다 공군기, 레이더 시설을 파괴하고 불과 57분만에 모든 인질을 구출해 다시 떠오른 작전이다.
이스라엘 현장 지휘관은 현장에서 전사했고 인질 3명이 총격전 도중 사망, 실종자 1명은 당시 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우간다 독재자인 이디아민 대통령이 이 작전으로 분개하여 살해하였다.
* 이디아민의 전용차로 위장하여 우간다군을 속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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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되어 돌아온 인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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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전사자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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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델란드 열차 사건
1977년 5월 23일 9명의 인도네시아 말루쿠 독립운동가들이 열차에 난입하여 승객 50명을 인질로 붙잡는다. 협상5일째 말루쿠 독립을 지지하는 10여명이 자청해서 인질로 더 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사건 21일째인 6월 11일 F-104 전투기 6대가 기차위로 초저공 비행을 실시하여 폭음으로 인질범을 당황하게 만든뒤 네델란드 해병대 소속의 특수부대 BBE를 투입하여 객차에 난 구멍에 1만5천발의 집중사격을 통해 인질범 9명중 6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한다.
인질중 1명은 이와중에 사망했으나 작전은 성공하여 생포한 3명의 인질범을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한다.

5. 네델란드 학교 인질사건
위의 열차사건과 같은 시각 4명의 인질범이 초등학교로 난입하였으나 열차사건과 같은 날 장갑차로 무장한 네델란드 BBE가 초등학교 벽을 폭탄으로 뚫고 난입하자 항복해버렸다.

* 위 2사건 해결의 중심 B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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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너스~ BBE로 찾는 도중에 나온 그림. 모델은 아마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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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독의 란주트 인질사건
1977년 10월 13일 팔레스타인 PFLP 소속 4명이 루프트한자 181편을 납치하여 5일동안 로마, 키프로스, 바레인, 두바이, 아덴 등 재보급을 전전하며 지중해를 비행하다 소말리아 모가디슈공항까지 찾아왔고 외부와 연결을 시도하던 조종사 슈만을 살해해버린다. 이에 서독정부는 1명을 석방하여 소말리아로 보냈다고 응답하고 GSG-9부대를 투입한다. 소말리아 군이 외곽경계를 맡고 장비와 작전지도는 영국 SAS가 담당했다. 동체와 날개옆을 폭약으로 구멍을 뚫고 당시 최신 장비인 섬광탄을 투척하며 기내에 난입 인질범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 이와중에 약간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선에서 마무리 된다.
* 모가디슈에 착륙했던 란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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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된 인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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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수비대 소속의 특수부대 GS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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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란 미대사관 인질사건
1979년 호메이니를 필두로한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왕조가 추방되었다. 팔레비2세는 미국에 망명생활하던도중 죽었고 사체는 미국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다. 이에 호메이니는 이란 범죄자를 이란으로 보내라고하고 미국이 거절하자 11월 4일 이란의 대학생들이 미대사관에 난입 63명을 인질로 잡고 2주후 13명 1980년 7월에 한명을 석방 남자 50명 여자 2명을 잡아두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1980년 4월 7일 단교후 공기밥 작전이라고 불리어진 작전을 계획하는데 주축은 당시 미 최정예로 키워진 델타부대였다. 그런데 문제 발생. 다들 숟가락 하나씩 올려놓으려는 군부로 인하여 육군, 해군, 해병대에 공군까지 가세하여 지휘계통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고 공기밥 작전으로 일단 사막까지 이동하여 CH-53의 보급을 수행하고 C-130 수송기로 날라오는 연료를 보급한후에 2단계로 독수리발톱을 발동하여 테헤란에 있는 인질을 구출하기로한다.
C-130이 임시 기지로 도착하는것까지는 좋았으나 CH-53중 일부가 모래바람으로 길을 잃어버린데다가 모래로 인해 CH-53고장! 거기다가 이란 버스가 지나가며 임시기지를 목격하는바람에 이란인 44명을 도리어 감금하는 상황까지 간다.
결국 하는수 없이 철수하는 미군. 그러나 CH-53과 C-130이 공중충돌하여 8명이 죽고 고장난 CH-53을 멀쩡한체로 버리고 철수하였으며 기밀문서도 고스란히 두고 나온다.
아무튼 대실패한 미군덕에 인질들은 잡힌지 444일이 지나고서야 협상을 통해 풀려났다.
* 사로잡힌 미대사관 직원/경비병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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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거리 이착륙을 위해 로켓을 장착한 C-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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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륙중인 CH-53 (사진은 최근 아프카니스탄에서 찍은 것임, 비슷한 분위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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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국의 이란대사관 인질사건
1980년 4월 30일 이라크에서 훈련받은 이란 남부 독립단체인 DRMLA의 인질범 6명이 대낮에 이란대사관에 난입 26명을 인질로 잡는다. 이에 영국정부는 협상을 진전시키는데 5일동안 5명을 석방한다. 6일째 인질범들은 본보기로 인질한명을 죽여 창밖으로 던지자 철의 여인이었던 데쳐마가렛 수상이 진압을 명령했고 히드로 국제 공항으로 진입하는 모든 항공기를 저공비행시키며 작전 수행을 숨겼고 근처 도시가스 공사장의 소음을 최대한 키워 벽으로 마이크와 내시경을 넣어 인질범의 상태를 감시. 5월 5일 저녁 SAS가 투입되어 전기를 끊고 뒷문으로 난입하여 5명을 사살하였고 인질 1명이 총격전 도중 사망하는 선에서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45분간 BBC방송으로 생중계된 이 작전은 대테러전 전문 부대인 SAS를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옥상에서 진입하는 훈련중인 SAS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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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로 생중계되어버린 구출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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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극의 777부대 사건
1985년 11월 23일 밤 9시 이집트혁명단체소속 3명의 인질범이 이집트에어 648편을 공중납치. 이와중에 이집트 비밀요원이 사격을 가하여 인질범 1명을 사살하고 반격으로 본인도 죽게되었다. 총격전으로 기내압이 떨어져 저공비행했고 말타에 착륙하게된다. 말타정부는 완강히 거부하고 활주로등도 꺼버렸지만 이집트 항공의 조종사의 기막힌 실력으로 안전하게 착륙.
몰타 정부는 하는수 없이 협상에 임하고 인질 13명이 풀려났다.
그러나 인질범들이 돌연 태도를 바꿔 15분마다 인질범 한명씩 죽이겠다고 했고 그 즉시 이스라엘 국적의 여자를 총으로 쐈으며 그 공언대로 4명의 미국인이 더 총에 맞아야 했다. (이중 3명은 살아났음). 이에 영국과 미국, 프랑스가 특공대를 투입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의 소개로 이집트군 특공대 777부대가 투입된다.
11월 25일 항공기 천정에 구멍을 뚫기위해 설치해둔 폭약을 터트리면서 구출작전은 시작됐지만 너무 많은 폭약으로 그 밑에 있던 승객 20여명이 즉사하고 섬광탄이 아닌 일반 수류탄을 출입구와 화물칸에 던지는 바람에 항공기 산소통이 폭발 화재가 발생하여 진입을 못하게된다. 이덕에 인질범들이 인질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고 인질 88명중 56명이 이과정에서 죽게되었다. 진입후 인질범 1명은 사살하였지만 주동자는 총을 버리고 총맞은 인질로 가장하여 병원까지 입원하였고 이후에 병원에서 체포 몰타에서 재판후 25년형을 받고 8년만에 풀려났지만 미국이 괴씸죄를 적용 체포하여 종신형을 구형해버린다.
* 납치된 이집트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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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서 나간자보다 누워서 나간자가 더 많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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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콜롬비아 정의궁전 사건
1985년 11월 6일 콜롬비아 반군 M-19소속 35명이 콜롬비아 대법원에 난입하여 3백여명의 인질을 붙잡는다. 콜롬비아군은 즉시 군대를 출동시켜 3시간만에 1층을 장악하여 2백여명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지만 인질범들은 저항을 계속하게되고 이에 EE-9 장갑차를 왕창 끌고와서는 오후2시부터는 포격까지 퍼부어 버리며 진압작전을 재개하였고 이튿날까지 계속된 공방으로 도합 1백여명이 사망한다. 혹자가 왜이렇게 많은 장갑차를 끌고 왔느냐?라는 물음에 현장지휘관은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서"라고 답변.
* 그러니까.. 이런걸 왕창 끌고와서 포격해버렸다는 이야기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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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프랑스 오베아 동굴 인질사건
1988년 4월 22일  남태평양의 섬인 프랑스령 뉴 칼레도니아 에서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내건 인질범들이 27명의 프랑스 경찰과 1명의 판사를 인질로 잡아 오베아에 감금하고 협상도중 인질 4명을 죽여버린다. 이에 10일만인 5월 5일 공수부대에서 34명, 경찰 공수특전단(EPIGN)에서 14명, 해군 특전단에서 16명, 경찰 특수부대(GIGN)에서 11명이 출동하고 동굴입구 기관총좌로 저항하는 인질범에게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여 제압하고 19명의 인질범을 사살해 구출에 성공한다. 이와중에 구출부대원 2명도 전사한다.

12. 싱가폴 에어라인 117편 사건
1991년 3월 26일 파키스탄 인민당(PPP)이 되고 싶다는 인질범 4명이 에어라인스 117편을 공중납치하고 협상 도중 승무원 2명을 떠밀어 버린다.
이덕에 기내 상황을 자세히 알게된 싱가폴 당국은 싱가폴 특공대 SOF를 투입준비한다.
3월 27일 밤 5분마다 인질 1명씩 살해하겠다고 인질범들이 공포하자. 불과 2분만에 SOF가 난입 30초만에 인질범 4명을 사살하고 인질 전원을 부상없이 구출한다.
* 싱가폴 특수부대 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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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종료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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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프랑스 8969편 인질사건
1994년 12월 24일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가기위해 준비중이던 프랑스에어라인 8969편에 4명의 공항 보안요원이 탑승하여 항공기를 장악하고 GIA라는 단체 소속임을 밝히며 관제탑에 이륙승인요청하자 관제탑이 거절하고 이에 승객중 알제리 경찰을 찾아 사살한후 밖으로 던져버린다.
알제리 특공대가 포위하였고 프랑스는 경찰특공대인 GIGN을 준비시키는 한편 노약자를 풀어주면 프랑스 입국을 허용하겠다는 조건을 걸어 인질 63명이 풀려났으나 알제리 특공대가 포위를 풀지않자 이번에는 베트남 외교관을 살해해버린다.
12월 25일 밤 8시경 인질이던 프랑스 직원이 30분안에 이륙이 안되면 자신이 죽는다며 무선이 들어왔고 30분쯤 곧 죽었다. 26일 새벽 2시경에 알제리는 포위를 풀었고 항공기에 엄청난 다이너마이트가 장착됐음을 알아차린다. 인질범들의 진짜 목표는 파리상공에서의 자폭이었던 것이다.
기장은 연료문제를 들어 마르세이유로 향했고 알제리의 반대로 알제리 영토밖 스페인에서 대기중이던 GIGN도 마르세이유로 이동 착륙 20분전에 겨우 도착하여 정비요원 등으로 위장후 진입준비를 마친다.
항공기가 착륙하고 협박과 협상이 오고가는 도중 오후 5시경 섬광탄과 함께 진압이 시작되고 조종사는 항공기창문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관제탑 저격수가 인질범을 사살하는데 도움이 된다. 30분간의 총격전을 통해 인질범 4명을 사살하였지만 11명의 특공대원이 부상을 입었고, 13명의 승객과 3명의 승무원도 부상을 입었다.
* 진입중인 G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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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TV중계화면으로 조종사가 탈출한 방풍창이 열려 있고 이 사이로 인질범 2명이 저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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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페루의 일본 대사관 사건
1996년 12월 17일 아키히토 일본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열렸는데 MRTA라는 반군 게릴라 14명이 대사관에 난입하여 7백여명의 인질을 붙잡게 된다. 물론 당시 일본계이던 후지모리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 이원영 대사도 인질에 포함되었으나 긴 협상 끝에 1차 인질석방에 포함되었다.
이에 페루정부는 땅굴을 통해 대사관으로 진입할것을 계획하고 주변 소음을 최대한 활용하여 땅굴을 팠고 4개월만인 4월 22일 오후 3시경 땅굴 3개소 입구에 폭약을 터트려 축구하던 인질범 3명을 폭사 시키며 140명의 특공대를 투입한다. 땅굴과 옥상으로부터 진입한 특공대는 인질이 있는 2층으로 제빨리 돌입하여 14명의 인질범을 사살하였고 그 총격전 와중에 2명의 특공대원이 희생되었으며 인질 1명이 사망한다.
* 일본 대사관을 장악하고 언론에 비친 인질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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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압작전은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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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후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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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2002년 10월 23일 모스크바의 극장에서 "노르트-오스트" 공연의 2막이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 체첸독립단체 42명이 난입하여 850여명의 인질을 붙잡는다. 당일 인질범은 환자와 어린이등 15명을 풀어주었으나 26세의 술취한 여자가 경찰의 제지를 뚫고 극장으로 난입하자 인질범들은 비밀요원으로 오인하여 사살해버린다.
이튿날 39명의 인질을 더 풀어 주었고 3일째는 19명을 더 풀어준다. 3일째 밤에는 열혈 여자 인질 한명이 빈병으로 여자 인질범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달아났고 그날밤 접근하던 경찰만 들통나게 되었다.
10월 26일 FSB(KGB가 전신)의 특수부대가 투입되었고 수면가스를 30분간 흘려보낸후 새벽 5시 30분 돌입하여 30분만에 작전을 마친다.
오전 7시경 가스로 쓰러진 사람들을 병원으로 후송하였는데 이 수면가스라고 알려진 가스때문에 67명이 죽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인질범 30명과 100여명의 인질이 이 가스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 진압부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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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압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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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출작전후 후송되는 인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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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가스로 잠(?)이든 인질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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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후의 끌려나오는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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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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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러시아 베슬란 학교 사건
2004년 9월 1일 개학식에 이슬람 과격단체와 체첸반군 혼성의 다인종 남여혼성 인질범 30여명이 난입하여 1천 2백명의 인질을 잡는 사건으로 첫날 좁은 체육관으로 1,200여명의 인질을 가두어 더위에 실시하는 인질이 속출하였다.
이튿날 부터 시작된 협상과정에서 일부 풀려나기는 하였으나 가족의 생이별로 울음바다가 되고 여기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인질범들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러시아 경찰에 RPG 2발을 발사하기도 하였다.
3일째 폭발음과 함께 인질들이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진압군이 투입되었다. 그와 동시에 인질범들의 무차별 학살이 시작되었으며 중무장한 인질범을 제압하기위해 T-72전차와 Mi-24하인드까지 무차별 포격을 실시.
이와중에 러시아 군경에서는 도망병이 속출하게 되었고 동네주민들이 총을들고 나타나 인질범을 죽이겠다고 끼어들면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인질범이 옆건물로 도망가는것이 목격되자 그 건물 통체로 날려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8시간동안의 격전끝에 어린이를 중심으로 3백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끝을 맺었다.
* 구출작전은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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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것은 희생자와 눈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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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라크 기독교 평화 사역팀 인질사건
2003년 이전부터 이라크에 들어가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던 기독교 평화 사역팀(CPT)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였고 전쟁중인 2005년 11월 26일 4명이 이슬람 성직자들을 만나러 가던중 납치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행이 미국탓이라고 했고 어떠한 행동도 하지말아달라고 하는 등 인질범에 동조하였다.
해를 넘겨 2006년 3월 10일 인질중 한명이 살해되어 이라크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고문흔적과 함께. 그러나 CPT에서는 거짓이라며 그 사람들이 그럴리가 없다고 하며 구출작전자체를 반대한다. 3월 23일 미국, 영국, 캐나다, 신생이라크군으로 특공대를 조직 인질구조에 나섰지만 인질범들은 없었다.
인질들은 더 웃긴게 구축작전에 협조하지 않았고 인질범에 대한 증언도 하지 않아 목숨걸고 작전에 참가한 특공대원들만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2007/08/01 17:50 2007/08/01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