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9/08 글뻥 나폴레옹 데뷔전 "툴롱 포위전" 분석 (2)
인간사의 모든 질서가 붕괴된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니, 질서 없이 살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를 욕망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이끌어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줄 Leader를 원한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300년쯤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프랑스가 그러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설 그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성적이 뒤에서 세는게 더 빠른 어떤 포병부대 대위가 있었다.
그 카오스한 상황에서 고향 코르시카 독립운동한다며, 탈영에 가까운 돌립운동하다 탈탈 털려서 잠적한 그였다.
(물론 출처 자료에 따라 중위, 대위라는 주장 등 2가지 상이한 주장으로 갈리지만, Wiki 에 근거하여 대위로 설정한다.)

프랑스혁명 4년차인 1793년의 프랑스 상황을 보자면,
- 1972년 12월 영국은 프랑스로의 곡물, 원자재 수출금지
- 1월 런던주재 프랑스 공사 추방
- 2월 국민의회는 만장일치로 만고불변의 숙적 영국에 선전포고한다. (당시 연전연패 하고 있던 오합지졸 프랑스군의 사정을 보자면 만용이었다.)
- 이에 영국은 즉시 대륙연합 예산을 편성하고 나폴레옹이 제거될 때까지 유럽대륙 연합군의 자금을 덴다. 
* 물론 이전 왕정에서 부터 내려오던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아시냐" 지폐(가치에 비해 3.3%만 인정받고 없어진.. ) 등 각종 문제가 계속 해서 내려오는 상황이었음.

영국에 선전포고하는 국민의회의 만용을 보자, 오히려 왕당파쪽에서 충분한 명분이 되었고,
혁명으로 군에서 쫒겨난 정치가, 군인들의 연합으로 손쉽게 남부 프랑스 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중에 가장 중요했던 전략요충지가 바로 툴롱이었다.
툴롱은 한국으로 치자면 "진해" 정도되는 해군력의 50%가량이 밀집한 전투함 70여척의 모항이었던 것이다.

일단, 혁명군은 다른 지방도시부터 탈환하고 왕당파들을 숙청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툴롱이 프랑스 해군의 가장 큰 해군 기지였기 때문에 이 앞에는 영국과 스페인 연합함대가 12척의 전함으로 진을 치고 봉쇄하고 있었다.
8월 28일 왕당파는 다른 지역의 진압소식을 듣고는 바로 외세를 끌어들이기로 결정, 영국과 스페인 연합함대를 툴롱으로 입항 시킨다.

영국입장에서는 견제하라고 내보냈더니 본진까지 그냥 무혈입성하는 꼴! (당시 프랑스 툴롱에는(70여척이 항구에 있었다. 70여척이!)
입에다 넣어준 떡을 누가 받아 먹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왕당파와 합세한 연합함대는 지상군 수비병령 22,000으로 늘어났다.

당시 진압군은 아비뇽과 마르세이유를 탈환하고 9월 8일 툴롱 서쪽에 도착한다.
이때, 사령관은 흔히들 미술가 출신이라고 알고 있는 "장 프랑스와 카르토"장군으로 9세에 군복을 입고 보병과 용기병의 경력을 가지다, 그림쟁이로 나름 이름을 날린 군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력전보다 Line to Line 의 전술에 능한 장군이었다는게 프랑스군으로써는 불행이었고, 나폴레옹에게는 행운이었다.

카르토 장군은 가장먼저 올리울스(Ollioules) 고지를 점령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이 후대에 평가가 절하되기도 하지만, 전략가라면 누구나 짚어줄 교통의 사통팔달 지역으로 툴롱 항구까지 약 6km, 바로 앞에는 툴롱까지의 시야가 확보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하지만, 카르토는 전술한바와 같이 그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다.

공격군은 방어군의 3배가 되어야 뭘 해먹는데... 그는 겨우 32,000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시말해, 약 1.5배의 전투력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했고, 전함의 수를 본다면 화력에서는 오히려 비등비등한 수준이었다.

야사에서는 그가 화포사거리를 몰라서 여기서 포를 올려다 놓고 화력전을 수행할 생각이었고 그걸 나폴레옹이 반대하였다고 하지만, 참고자료를 뒤져보고 앞뒤를 맞춰본 결과 화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자신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진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울리우스에 배치된 포가 겨우 1개 포대였다고 확인되는데, 당시 1개 포대라 해봤자 겨우 6문에 불과한 전장식 포이다. 다시말해 그냥 견제용... ㅡㅡa) 

암튼, 이러한 상황에서 남부에서 탄약수송이나 하던 나폴레옹이 온다.
이 상황도 조금은 우연이라 생각되는게, 카르토 장군의 정치장교였던 살리세티는 코르시카 출신으로 나폴레옹의 동향이었고, 마침 포병지휘관인 동마르탱이 부상을 입어 그 자리가 비었었다. (그가 탄약수송임무를 수행했었던 일도 후일에는 엄청난 행운이었다는걸 후에 설명하겠다.)

작전회의에서 아마도 그는 툴롱항을 봉쇄할 수 있는 지점을 공략하자고 했던 모양이다.

나폴레옹이 병력 1천명을 주면 공략해서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 곳이 바로 항구입구에 존재하는 레뀌에뜨 요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현대의 지도로 본 그 때 그 지역, 사거리 2Km의 포로 항구 안쪽에 있는 대부분은 사거리안에 들어온다. 최고의 요충지이지만, 대규모 함대가 존재한다면 한방에 몰살당할 수 있는 지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나폴레옹을 믿지 못한 카르토 장군은 병력 5백을 내어주었고, 결국 이 작전은 실패한다.
문제는 이 지역의 중요성을 연합함대가 뒤 늦게 깨달은데 있다.
이에 연합함대는 레뀌에뜨 요새 전면 진압군의 진격로 상에 멀그레이브 요새를 증축하고 3개의 작은 방어 진지를 신설한다.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략적 요충지에 집중해야할 때 자신의 전략을 몰라주는 카르토 덕에 일이 더 커지게 된것이다.

그러자 그는 곧 자신의 상관을 바꿔달라는 요청서를 자신의 연줄을 통해 정치가 빽들에게 보낸다.
그에 대한 회신으로 카르토 장군은 짤리고 의사 출신 도페 장군이 오지만, 전장터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포화에 두동강 나는 모습을 보곤, 전장을 떠나버린다.
세번째로 부임한 뒤고미에는 나폴레옹에게 포병 전권을 주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능력을 높이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9월 툴롱 전역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1차 공략전이 실해하고 멀그레이브 요새의 축성과 진지강화를 바라보며 보병 돌격보다는 자신이 이전에 수행했었던 임무인 탄약수송 임무를 통해 샅샅히 알고 있던 무기고의 위치와 포의 수량 정보를 가지고 주변에서 약 300문의 포를 모으고 전직 포병장교, 포병출신 사병들을 징발한 상태로 약 1달 동안 단 6문의 1개 포대를 300문의 50개 포대로 증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휘권을 받은 나폴레옹이 한일이 가히 놀라울 정도인데, 그는 공성을 위해 포병진지를 하나 씩 늘려서 천천히 진격하는 전법을 채택하고,
11월 20일 자코뱅이라는 포병진지를 만든 이후 28일에Hommes-sans-peur 진지를 12월 14일에Chasse Coquins 진지를 만들어 압박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앉아서 두들겨 맞는 쪽은 영국과 스페인 군이요. 가만히 피해없이 포탄만 날려대는 쪽은 진압군 쪽이니, 연합함대와 왕당파는 진지를 빼았기 위해 돌격하게 된다. 물론 공격군은 격퇴당하고 오히려 영국의 오하라 장군이 포로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12월 16일 충분한 포병화력을 확보한 프랑스는 총 병력 6000으로 총공격에 나서고 새벽3시쯤 1천의 피해를 입고 마침내 전략적 목표가 달성되게 되었다.
마침내 항구에서 가만히 앉아 포에 맞느니 영국과 스페인 연합군은 태울 수 있는 왕당파를 배에 태워서 철수하게 된다.

영국은 철수하며 프랑스해군 함정 70여척중 15척은 나포하고 (2배 장사!) 나머지는 불에 태워 제거한다.
(이후 영국은 프랑스에 대해 해군 우위를 확보하게 되고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나폴레옹을 파멸로 이끈다.)
배에 올라타지 못했던 왕당파 1천명 이상이 진압군에 보복 학살 당하고,
나폴레옹은 이때의 활약으로 무려 준장 (별 하나) 계급을 달게된다.

오늘 몇몇 사료를 분석하고 해외사이트를 뒤져가며 김창준님이 가지고 계신 고민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내 해석은 이러하다.

- 전략적 관점에서 툴롱은 자립이 불가능한 포위상태였고, 그들이 살 길은 항구를 봉쇄중인 영국 스페인 연합함대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 당시 주력이었던 24파운드 포는 현대 기준으로는 경량포이지만, 당시의 수송능력을 볼때 중포에 해당하고, 사거리는 2Km 안밖이었다.
- 나폴레옹은 전역에 참가한 이후 처음부터 전략적 목표 달성은 영스페인 연합함대의 추출이었고, 그는 항구의 폐쇄만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다.
- 하지만, 카르토는 보병/용기병 출신으로 방어진지 하나씩 돌파해 가는 정공법을 채택하게되고 결국 긁어 부스럼 만든 격으로 멀그레이브 요새등 방어를 강화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 나폴레옹은 이 작전에서 공훈을 세우지 못하면 또 한직은 전전해야 하는 신세였고, 그는 지금까지 한직에서 쌓은 정보와 인맥을 동원해 인근 지역의 무기고를 털다시피해서 최종 300문의 포를 모았다.(그의 신기에 가까운 업적은 후술한다.)
- 하지만, 카르토는 나폴레옹의 화력전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보병돌격 등의 삽질만 강행했다. (당시의 머스킷의 화력 명중도 등을 고려한다면, 1~2방 쏘고 보병돌격이 일반적이었다.)
- 카르토가 짤리고 나서 도페장군이 오지만, 곧 전장을 떠나고 뒤고미 장군은 이러한 나폴레옹의 화력전을 찬성하고 포병지휘권을 나폴레옹에게 일임한다.
- 나폴레옹이 택한 전략은 전형적인 공성전이었다. 한칸 씩 전진하고 포병으로 적 진지를 때리는 방법이다.
- 위의 예는 영화 라스트 모하칸에서 상세히 묘사된다.


- 현대전에서도 대규모 공성전이 존재했는데, 멀리 독일군이 세바스토폴에서 만슈타인은 1300문의 화포를 집중하여 공략에 성공한다. 가까운 예로는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민은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의 요새를 하나씩 공략하고 부품을 분해하여 운반한 화포를 다시 조립하여 공성하였다.

- 전투의 결과 연합함대와 왕당파는 총 2천의 병력을 잃었을 뿐이다. 2만 4천중 9%의 병력손실을 입은데 비해, 프랑스 진압군은 12.5%에 달하는 4천의 병력을 잃었다.

* 나폴레옹의 툴롱 포위전 정리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레뀌에뜨 요새를 탈환한것이 아니다.
그가 도착한 9월 16일 프랑스 집압군은 고작 4문의 캐논포(직사포)와 곡사포 2문을 가진 1개 포대가 전부였고, 지휘명령계통도 엉망이어서 지네 맘대로 포대 위치를 변경하거나 할 정도였다.
나폴레옹이 탄약수송의 한직을 돌아다녔다는 것을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곧 이 경험을 토대로 3일만에 14문의 캐논포와 4문의 곡사포를 확보하여 총 3개 포대를 만들었고,
매일 마르세이유로 부터 5천 포대의 모래자루를 날라서 방벽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확보한 울리울스에 80명의 대장장이를 모아서 포와 포탄을 조병하였다. 그러나, 화약이 문제였다. 
화약이 확보되지 않은 포대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나, 보급창의 수송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여기서도 나와서 보급창과 싸워가며 화약을 확보한다.
10월이 되자, 총 11개의 포대를 배치할 수 있었다.
그는 100문이상의 포를 가지고 10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6주간 24시간 리틀지브롤터라 불리던 영국/스페인의 방어선을 두들겨 버린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가 보유한 포는 300문이었다.
이렇게 모인 300문을 최초로 집단 운영하였다. 그가 유럽최고의 화력전 전문가라 칭하는 이유이다.
일개 대위가 1개 포대에서 시작하여 총 50개 포대를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 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참고로 한국군 포병전력중 견인포인 155mm 는 총 1500문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습이 아닌 지연전의 과는 분명해 보인다.
이때 잃은 70척의 전투함은 이후로도 복귀되지 못했고, 영국과 비등비등하던 해군력은 이후로 영국에 열세로 놓인다.
영국은 이러한 우위로 대륙을 봉쇄하게되고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봉쇄령으로 맞서지만, 러시아의 영국 무역을 응징한다며 모스크바로 진격.
이후 패망 테크를 탄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건,
첫째, 나폴레옹이 탄약 수송임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이다.
둘째, 툴롱은 나폴레옹을 장군으로 만들어 줬지만, 이때 툴롱에서 프랑스 함대의 손해를 어떻게해서는 최소화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나머지 프랑스 함대를 동원하여 역포위했다면? 그래서 항복을 받아냈다면? 3개월이라는 전투기간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인간사 승패는 "운"이라는 걸 확인하는 역사의 한장면이었다.

2014/09/08 21:03 2014/09/08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