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어준 횽의 강연


2. 도올선생님의 강연


* 행복해지는 방법 정리. (개인적인 해석!)
1. 자신과 대면하고, 언제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고민해보라.
2. 하고싶은게 있다면 지금 당장하라.
3. 결과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는거다. 결과에 대해 미리부터 고민하지 마라.
4.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접어라. 불행하게 사는건 "미친거다."


2012/01/05 19:09 2012/01/0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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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무기

Memory 2011/08/30 14:07
"행복"이라는게 있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면 발생하는 감정이다.
(* 이하는 개인적 소견으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지 않았고, 단정적인 말투가 사용되었다 해도, 전문가의 견해가 아님.)

그래서, "행복"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내 욕구가 충족되었어"라는 거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욕구가 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밥먹고 싶은 욕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욕구, 잠을 잘 자고싶은 욕구, 어딘가에 중독되고자 하는 욕구 등등등

그런데, 행복이라는 단어는 밥먹고나서, 잠을 잘자고나서, 중독된 것을 풍성하게 취하고 나서 쓰지 않는다.

"행복하다"라는 단어는 "인간관계"에 만족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예를 들어, 밥을 맛있게 쳐묵쳐묵하고 나서 "아~ 행복해!"라던가, 단 잠을 잘자고 나서 "아~행복해!" 또는,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서 "아~ 행복해!"라고하기보다는 "잘먹었다." 혹은 "잘잤어~" 혹은, "아~ 시원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보다 고차원적인 인간관계 즉, 정치적인 행위가 만족스러우면 우리는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아주 훌륭한 멘토와 생활하는 멘티, 사제관계, 연인/부부관계, 만족스러운 직장내의 인간관계, 행복한 국가 등등 어떤 집단내에서의 관계가 만족스러울때, 우리는 "행복한OO" 또는 "행복해요~"라는 말을 사용하는게 자연스럽다.

즉, 행복이라는 단어자체는 무언가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 작디 작은 무언가를 모아 모아서, 한번에 분출되는 반복되지 않은 어떤일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불행하다는 것은 이러한 관계가 불만족스럽고, 가지고 있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현장이 그토록 불행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가정에서 불행하다 못해 미치는 사람이 나타나는 이유는, 직장에서 불행하다못해 미치고 거기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관계가 불만족스럽다 못해, 나중에는 왕따라는 심리적 집단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해한 심리적 폭력이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 "회피"하는 경우로 희화시킨다던가, 아무런 대응 없이 사라지는 경우
- 이성적으로(너무 이성적인 경우로 "초이성적"이라는 용어를 사용) 객관화하여 자신과 상대방의 욕구를 무시하는 경우
- 자신의 욕구는 충족시키면서 상황을 나열하는 "비난"
- 자신의 욕구는 배제하면서, 대상자의 욕구만 존중하면서 상황을 이야기하는 "회유"
- 상황을 배제하는 경우로 자신과 대상자의 욕구만 중요시 여기는 경우
상황예제 :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면서 물좀 떠오라고 했다.
회피인 경우 : "......(이미 도망치고 없다.)" / 아빠, 엄마가 아까 뒤로 벌러덩 넘어졌어요~ (상관없는 이야기나열) / "아~네!"(빨리해주고 도망갈 궁리중)
초이성인 경우 :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물좀 떠오라고 하시네요. (상황만 나열함)
비난인 경우 : "아빠는 손이 없어? 그냥 아빠가 떠먹어"/ "아빠, 나 공부해야해서 너무 바빠, 아빠가 떠드실레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음)
회유인 경우 : "아빠 힘드시죠? 물은 아빠쪽이 더 가까운데, 그냥 떠드시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자신의 욕구가 없음)
애증인 경우 : "아빠 싫어!!!", "아빠,좋아 좋아~" (상황이 없고, 눈에는 하트가 세겨진다)

1가지 사건에 대해 우리는 5가지의 잘못된 대응과 1가지의 욕구를 일치시키는 대응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경우 아마도, "목이 마르시군요. 약간 답답하시겠어요. 저도 좀 답답해요. 물열고 오셔서, 제게 상황을 안물어보시고, 부탁하시니 조금 속상하군요. 다음부터 상황부터 물어보고 부탁하시면, 너무 기쁠것 같아요.그리고, 물은 지금 떠다 드릴께요."

재미있는것은 "부탁"의 힘이다.
요즘 딸네미와의 대화는 이러하다.

나 : "혜주야, 아침에 아빠가 좀 늦었는데, 이제 일어나줄레?"
헤주 : "시러~~ 잠 더 자고 싶어"
나 : "혜주가 일찍일어나려니 힘들지?"
혜주 : "응! 시러~ 더 자고 싶어~"
나 : 혜주가 아침에 안일어나서 아빠가 속이 많이 상해, 늦으면 스스로 아빠는 스트레스 받으니까, 아빠가 이렇게 부탁하겠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 주세요~

한 문장에는 내 욕구와 딸네미 욕구, 상황이 다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뉘어 전체 문맥상 여러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는데, 마지막 "부탁"에 대해 깨달은 최근의 힘은 딸네미 10대 엉덩짝 두들기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았다.
특히, 이 일이 있은 후, 옷을 갈아입혀주며, 기분이 어땠어?라는 질문에...
"응~ 기분이 좋았어. 아빠가 부탁해서~~" 라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행복"이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문제는 이 "행복"이라는 것이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보고 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감정을 받기를 원하게 된다.

사람보다 가치를 중요시 여겼던 테무진이 세계정복하게 된데에도 "시스템을 파괴를 통한, 인간 평등"을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착취하기보다는 일한 댓가를 나름 공정하게 했고, 실력이 있으면 누구라도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했던 테무진은 일개 노예에서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위엄을 토해낸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보는 몇몇 집단들은 이러한 진리를 무시하려 든다.
예를 들어, 다른 종교라고 폄하하는 건, "비난"이라는 심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이다. 또한, 다른 정치권을 수꼴이니, 빨갱이니 하는 것도 역시 "비난"이다. 어느 단체나 개인의 의견을 무시하는건 "회피"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어느 한쪽이 자살하던가 미친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로 확장해보면, 흔한 폭력시위 역시 이러한 집단에 의한 심리적 폭력에 시달린 경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가들이, 혹은 목사들이 어느 한쪽을 비난하고, 회피하는 사회를 당연히 여긴다면 우리에게는 사회구성원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프로젝트 현장에서 고객과 개발팀이 서로 비난하거나, 회피한다면 그속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얻을 수 있을까?
잘된 프로젝트를 회상해보면, 개발팀에서 일어난 "행복"이라는 감정이 고객에게 전염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과 개발팀이 항상 웃으면서, 서로 배려하며 일 할때는 야근이 힘든게 아니다.

조금씩, 2011년의 연구과제로 삼았던 행복하게 일하며, 개인별 맞춤 행복이라는 측면의 연구가 이론적으로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며, 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감은 너무나 벅찬 일이다.

2011/08/30 14:07 2011/08/30 14:07
우리나라의 인재중 4명이나 자살한 사건. 물론 그 4분에 가려진 더 많은 학생들의 자살.
나아가 사회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살과 함께 자식까지 죽여가며 세상과 하직하는 모든 분들께 왜 그런 결단을 했는지 왜 사회가 당신들께 그리 밀어냈는지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이 포스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대한민국은 어떤나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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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등등등....

수많은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대한민국은 이런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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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방식이 바로 위의 이미지와 거의 같다.
바로 "무한경쟁"이다.

건전한 경쟁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유익하지만 과다한 경쟁은 오버페이스하게 만들고 서로 협력할 기회를 빼앗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 인간은 과연 혼자 살아 왔을까?
우리의 선조들이 남겨놓은 그림을 가만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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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혼자 사냥하지 않았으며 혼자 농사와 채집을 하지 않았다.
농경시대가 끝난 산업화 시대 역시 누구도 혼자 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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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몇 억년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류라는 종족자체가 살아 남은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개인이 아닌 집단을 이루어 집단의 리더에 따라 생존에 관련된 목표를 달성해 왔기 때문에 인류는 살아 남은 것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조직의 구조는 똑똑한 리더와 우직한 팀원들이 같이 일하는 모양새로 "1마리의 양이 이끄는 99마리의 사자보다 1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99마리의 양이 더 탁월하다"는 표현으로 우리 스스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모두가 쟤자식은 이렇게 "람보"와 같이 이 사회에서 살아 남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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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의 끝장나는 생존 본능만이 보이나 보다.
그러나, 우울하게도 람보는 베트남 참전군인으로 "정신병자"다.
그것도 "PTSD"에 걸린 참전군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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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살아 남은자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네 사교육 학원에서 토론수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대학 4년 내내 토론 수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즉, 우리는 우리 주변에 담을 쌓아 놓고 어떻게든 그 담안에서 살아남기를 원하고 돈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똑똑한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못하는 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정치가가 된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청업체를 존중하며 상생하겠다고 생각하는가?

그냥 보여지는 이미지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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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예를 들어 한과목을 100점 맞고 나머지 50점 받아서 평균 60점 받는 학생과 전과목 80점 받는 학생 중 어느 학생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되어 지나?
대부분의 우리는 당연히 평균 80점 받은 학생을 우수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국어 100점 맞는 학생과 수학 100점 맞는 학생이 섞여서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우리의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데 이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이걸 고쳐서 그것도 대규모로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회사에게 같이 일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협력이 잘되는 사람이지 서울대 출신의 토익 점수 900점짜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채용시스템부터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채용시스템을 협업을 잘하는 사람을 뽑는 식으로 뜯어 고치고 대학에서 토론식 수업을 따라 갈 수 있는 학생을 뽑는다면 사교육 문제가 지금보다 덜 할 것이고 "행복한" 국민이 될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 지금보다 우리는 더 평등해져야 할것이다.

즉, 평등과 행복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이며 가치이며 다른 반부패, 빈부격차해소, 사교육문제해결 등은 이러한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한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다시한번 이사회에 희생되는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다시 목표를 재설정하기를 제안한다.
2011/04/15 00:58 2011/04/15 00:58